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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을 벗자!

학교이야기_반전의 화이트데이

by 망구리즘 Mar 14. 2025

새 학기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나니

벌써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꽤 보인다.

우리 반은 공기(살구) 열풍이 불어 남녀 불문하고 형형색색 작고 귀여운 공기를 지니고 다닌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휘젓고 다니거나 시끌시끌 떠드는 모습만 보다가

비교적 소음 데시벨이 낮은 옹기종기 공기놀이를 보니 귀와 눈이 편안하다.

(제발 1년 동안 이 유행이 끝나질 않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쉬는 시간 쭉 교실을 훑어보니 낌새가 수상한 여자 무리가 보인다.

웬일로 공기놀이를 안 하고 3~4명이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뭘 꺼내서 손에 넣고 꾹 쥐고 있는 모양새다.

합리적 의심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나와 눈이 자주 마주치는 걸 보니 진짜 켕기는 게 있나 보다.


작년 지긋지긋했던 그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파우치를 쥐고 후다닥 나가서 화장실에서 틴트를 바르던 그녀들.

젤리, 과자, 초콜릿을 몰래 먹던 그녀들.

앞에서는 아니라고 잡아떼던 그녀들.

가방 안을 탈탈 뒤집어엎고 싶게끔 내 속을 뒤집어 놓은 그녀들.


그런 못된 버릇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속이 부글부글 댔다.

잠깐 연구실에 다녀와 자연스럽게 무리에게 다가가니 역시나 역시나! 이클립스통을 손에 쥐고 있다.

이렇게 바로 걸리기도 쉽지 않은데 이제 막 6학년이 된 아마추어긴 하구나.


'이거 뭡니까'

'...'

'이클립스를  왜 학교에 들고 옵니까'

'ㅇㅇ(결석한 아이) 의자 위에 있었습니다.'


발뺌하는 여자 아이를 뒤로하고 이클립스 통을 열어보니 고무찰흙으로 가득 차 있다.

예상치 못한 내용물에 어안이 벙벙 아리송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자리로 와버렸다.


거짓말인가 우연인가 생각하다가 교탁 위에

'나 선물이에요'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츄파춥스세트와 하트모양 이클립스를 발견했다.

'선생님(하트) ' 네임펜으로 아기자기 적은 문구까지.


...


잠깐 버퍼링의 시간을 가지다가 깨달았다.

'아, 화이트데이구나'

퍼즐이 맞춰졌다.

예쁜 마음으로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모옷된 짓으로 착각했다.

몰래 하는 행동에는 눈치가 빨랐지만 화이트데이에는 무지했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득 머금은 표정과 말투로 '얘들아 고맙다. 이런 걸 왜 사 오니. 마음만 받을게. 6교시에 게임해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자'

허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을 놀려먹으려던 게 아니라

화이트데이라고 선물을 준비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혼자 추리극으로 오해해 버렸으니 조금 민망하다.

새 학기는 새 학기답게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


색안경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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