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하고 위험한 행복
해와 수증기 친구들이 만나 파티를 벌이는 듯한, 무더운 어느 날.
모니터 앞에 앉은 김쿼카는 더위 속에서 키보드를 타닥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아무리 따뜻한 걸 좋아하는 동물이라지만 이건 좀 지나쳤다. 가만히 있어도 털은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선풍기도 옆에서 열일하지만 바람은 미지근해진 지 오래다.
‘바다 한복판에서 표류하면 이런 기분일까?’
김쿼카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하... 습기 덩어리인 바닷속이 이거보단 시원하겠지. 여름 초인데 벌써 이러면 한여름은 어쩌라고…‘
시계 초침이 몇 번이나 돌아갔을까. 쿼카는 결국 더위에 녹아내리듯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다행히 바닥은 그나마 시원했고, 무기력했던 표정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재택 근무 언 n년 차.
재택근무 만렙은 아니고, 천렙 정도는 되는 김쿼카지만 1년에 최대 5달 머물다 가는 ‘여름’ 버전 재택근무 난이도는 너무도 사악했다.
더울 거면 그냥 덥기만 하지, 왜 이렇게 습도까지 높단 말인가. 햇볕의 따땃함을 즐길 새도 없이 몸은 축축 늘어져 버렸다. 여기에 듀얼 모니터와 데스크톱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까지 합쳐지면 업무 집중도는 바닥을 찍곤 했다.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보면 마치 악마의 유혹을 속삭이는 듯 에어컨이 김쿼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과 한 몸이 된 동물은 그 유혹에 흔쾌히 응답하고 싶었지만 대가 없는 쾌락은 없다고 했던가. 작년 여름,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풀가동했다 날아든 난방비 폭탄을 떠올리자 쉽사리 가동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김쿼카에게는 아직도 몇 달의 여름이 남아있었다.
그 순간 쿼카의 머릿속에는 여러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O* : “지금 네가 안쓰럽지 않아? 땀에 찌든 널 봐봐. 난방비는 다음 달의 네가 낼 거야. 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면 돼. “
•o• : “퇴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좀만 더 버텨봐. 지금 좀 참으면 그 돈 아껴서 맛있는 것도 사고 다음 달 좀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 작년에 난방비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빵도 참고 고생했잖아. “
*O* : ”날 써봐. 내가 얼마나 시원한지 너도 알잖아. 리모컨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돼. 몸도 뽀송해지고, 업무 집중력도 확 오른다니까? 일을 잘해야 돈도 벌지.”
멍하니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동물은 마치 홀린 듯 에어컨 리모컨을 향해 손을 뻗었다.
•o• : “저런 소리는 듣지 마! 저기 똑똑, 금방 지.. “
자제를 권하던 목소리는 점점 잠잠해지고 고요하던 방안에는 맑은 기계음이 울렸다.
“띠링, 냉방을 시작합니다. 설정 온도, 26도. “
스르륵 다가오는 냉기에 팔다리를 휘젓던 김쿼카는 슬며시 웃으며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래. 당장 더워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나. 배달 좀 덜 시켜 먹지 뭐. 보너스도 곧 들어오고.... 이렇게 행복한걸. 진작 틀 걸 그랬어.‘
시원한 방 안에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던 동물은 퇴근 후에도 그 작은 천국을 좀 더 누렸다.
소소한 에필로그)
김쿼카는 지속되는 더위에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외치며 에어컨 바람을 누렸다. 하지만 다음 달 들어오기로 했던 보너스도 회사 사정으로 기약 없이 미뤄지고.... 김쿼카는 시원한 쾌락의 대가를 식비 절약으로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