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일요일.
김쿼카는 마을에 작은 시장이 열려 오랜만에 필요한 식료품들을 사서 양손 무겁게 집으로 낑낑대며 걸어가고 있다.
‘양배추라도 나중에 살 걸. 덤으로 야채 얹어준다는 말에 너무 많이 샀나 봐. 무거워...‘
쿼카는 점점 아파오는 팔에 결국 얼마 못 가 길목에 있는 놀이터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픈 팔을 주무르며 고개를 돌리던 찰나, 나무를 타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우와! 좀만 더 올라가면 꼭대기도 올라갈 수 있겠어! “
”람쥐 다음에는 내 차례야. 다들 잊지 마! “
”나 대단하지? 여기까지 올라왔다! “
아이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두꺼운 나무줄기를 두 손으로 잡고 그네 타듯이 놀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분명 쿼카도 그랬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 시절을 잊은 채 아이들이 떨어질까 신경만 쓰였다.
‘아, 저렇게 놀면 위험한데.. 옆에 다른 그네나 미끄럼틀도 있는데..‘
쿼카가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중 나무 꼭대기를 향하던 아이가 결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떨어진 아이는 꿋꿋하게 털며 일어나더니 해맑게 말했다.
“나 저기까지 올라갔다! 진짜 재밌어. 다음에는 꼭대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토순이 하고 다음에 나 또 할래. “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해볼래! “, “다음엔 내가 꼭대기까지 갈 거야! “하고 외쳤다. 서로의 도전을 응원하는 눈빛이었다.
김쿼카는 한참을 아이들을 지켜보다, 양손 무겁게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고 있다.
쿼카는 나무에서 떨어진 뒤, 반짝이는 얼굴로 다시 도전을 외치던 아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나무 꼭대기 도착’이라는 목표 달성 문턱 앞에서 실패했지만, 아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도전하겠다고 외쳤다. 그 과정을 온전히 즐겼던 모습은 지금의 김쿼카와는 너무도 달랐다.
쿼카는 무언가를 도전하기 전 실패 가능성이 높다면 시도조차 망설였고,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도전하지 않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익숙함과 안전함만으로 채워진 생활은 어느 순간부터 새로움과 설렘은 잃어갔다.
이 동물도 분명 그 아이 같은 모습이었을 때가 있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신나게 도전하던 때가 말이다. 마치 롤러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을 넘어져도 웃으며 마침내 쌩쌩 돌아다니던 것처럼.
평생 겁이 없을 것 같던 어린 동물은 시간이 흘러 걱정 많고 겁 많은 어른이 동물이 되었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던 어린 쿼카는, 이제는 어느덧 좁아진 세상 안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 정리를 마친 동물은 저 멀리 넣어두었던 추억 상자 안 버킷리스트를 슬며시 꺼내 보았다.
ㅇ 스노우퐁퐁 마을 눈밭에 누워 패딩 입고 손발 파닥파닥 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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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직접 차 운전해서 감귤섬 나 홀로 여행 가보기
ㅇ 외국어 배워서 외국 동물과 프리토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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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원하는 회사 취뽀해서 사원증 매고 회사 주변 카페에서 커피 사 보기
ㅇ 대학당 때 외국 여행 1년에 한 번씩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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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친구 같고 다정한 동물 만나서 결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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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쿼카는 한참을 버킷리스트를 곱씹어 보다 생각했다.
‘와. 이런 것도 하고 싶었는데..! 사원증 마시고 커피 먹기 뭐 이런 건 이뤘네. 하나씩 해보자. 못하면 어때. 차근차근하다 보면 할 수 있을 거야. 재밌게 해 보자.‘
동물은 리스트 중 무엇을 먼저 해볼까 고민하다 ‘외국 동물과 프리토킹‘ 을 먼저 해보기로 하였다.
핸드폰을 열심히 검색하던 쿼카는, 마을 외국어 학습 커뮤니티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레 신청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 디던 동물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침대 위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소소한 에필로그)
**쿼카의 머릿속. 꿈 TV 채널 ON**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작고 아늑한 동굴 속.
김쿼카라는 어른이가 혼자 살았답니다. 쿼카는 하루하루,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지만 때로는 이 동굴 속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어느 날 집배원 둘기씨는 그런 쿼카에게 동굴 밖 세상은 넓고 재밌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답니다. 쿼카는 미지의 세상이 궁금해 언젠가 동굴 밖 모험을 떠나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바깥세상은 쿼카에게 너무도 무서운 곳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날은 비가 와서, 어느 날은 동굴이 너무 포근해서
어느 날은 밖에 나갔다 나쁜 동물들을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 어느덧 몇 개월이 흘러버렸어요.
그 다짐이 잊힐 무렵.
동굴 속으로 바람이 휭하고 들어와 쿼카의 하나뿐인 모자가 동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동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찾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을 딛기 시작했어요.
걱정 속에 마침내 동굴 밖 세상을 본 쿼카의 눈은 큼지막하게 켜졌어요. 저 멀리 눈앞에는 수수하게 피어난 들꽃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답니다. 쿼카는 한참을 멍하니 들꽃밭을 바라봤어요.
그날 이후로 김쿼카는 조금 더 자주 바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쿼카의 작고 아늑한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더 넓어졌어요.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