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이몽

by 김이름

N 년 전, 어느 사무실 출근 날


사무실의 동물들은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을 아쉬워하며 모여 앉아 짧은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에 처음 하는 업무가 있어 점심시간 내내 속으로 매뉴얼을 곱씹던 쿼카는, 갑자기 날아든 맞은편 사수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 주 금요일 공휴일인데, 쿼카님은 어디 안 가요? 입사하고 휴가도 많이 안 쓴 것 같던데 “


약간 어색하게 웃던 쿼카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 아직 일 익히는 부분이 있어서요. 빨리 배우고 적응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중에 써야지 하다 보니까 잘 안 썼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엔 짧게 감귤섬에 여행 다녀오려고요. “


쿼카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다른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좋은 계획이네요 “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사수인 부엉 과장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의 조용한 모습에 김쿼카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뭉개 뭉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찰나 부엉 과장이 천천히 부리를 열었다.


“지금 어느 정도 다 배우기도 했고 저연차인 지금 기회 될 때 편하게 쓰고, 휴가 붙여서 멀리 여행도 가는 게 좋아요. 해가 바뀌고 연차가 쌓일수록, 오히려 더 쓰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


”아, 넵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


당시 김쿼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말을 공감하긴 어려웠다.


그때는 그저 맡은 일을 해내고 회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급하고 벅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사 초, 휴가는 일정 기간 업무 적응 후 갔으면 좋겠다는 팀장님의 당부도 있었기에 쓰기 눈치도 보였다. 그래서 막연히 시간이 지나면 일도 익숙해지고 연차도 쌓여서 편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현재 김쿼카만의 작은 사무실


김쿼카는 다음 날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다. 설렘이 가득할 것 같지만 웬걸 이른 오전부터 점심시간인 지금도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공감되지 않던 사수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해가 바뀌고 연차가 쌓일수록, 오히려 더 쓰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그때의 어린 동물은 몰랐다. 업무가 익숙해져도 맡은 일도 늘어나 지금처럼 하루 이틀의 휴가를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하고 분주해야 할 줄은. 업무별 대직 동물을 찾아 부탁하고, 예외 및 특이사항 공유도 일이었다. 그리고 휴가 전날이면 종종 이상할 만큼 묘하게 애매한 요청건들이 들어오곤 했다.


'지금 꼭 이걸..?’ ‘아.. c 왜 하필 오늘이야.’


쿼카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곤 하나하나 처리하다, 지친 얼굴로 책상 앞에 잠시 엎드리며 생각했다.


’ 그때, 왜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을까. 편히 떠날 수 있을 때 막막 2일도 붙여 써보고, 멀리 여행도 가볼걸...‘


‘선처리에, 혹시라도 잘못 처리한 일을 동료들이 수습할까 신경도 쓰이고.. 멋모를 때 많이 써야 했어.‘


먹구름 같은 상념에 잠겨 모니터를 바라보다 쿼카는 1시에 가까워진 걸 보고 화들짝 일어났다. 다시, 달려야 할 시간이었다.


김쿼카는 자그마한 손으로 볼을 탕탕 두드리며 생각했다.


‘지나간 일 후회하면 뭐 하리. 내일만 생각해 김쿼카! 오후 달려서 6시 땡 하면 칼같이 사라지자구. 인계서는 다 넘겨놨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곧 쿼카의 눈빛이 반짝이며 휴가 전 날의 광기의 집중력이 발동되었다. 눈은 모니터 곳곳을 누비고 손가락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가며 화르륵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을까. 모니터 아래 시계가 6시 1분을 가리키기 무섭게 회사와의 연결을 끊었다. 자리에서 기지개를 켠 동물은 외쳤다.


“난 이제 자유야!! “


고요한 방안의 외침이 김쿼카의 휴가 시작을 알렸다. 열심히 일한 동물, 이제는 즐길 시간이다.


소소한 에필로그)

행복했던 휴가의 끝자락, 집으로 가는 차 안의 김쿼카는 우울하다.


’ 아직 휴가 안 끝났는데 왜 슬프지.. 집 가는 게 꼭 일하러 가는 것 같네..‘


뚱하던 표정을 짓던 동물은 휴가 때 신나게 놀았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다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나중에 또 와야지. 다음엔 좀 더 길게 가볼까 봐. 며칠 바쁘게 살지 뭐.’


다음 휴가를 기약하던 김쿼카는 방안의 모니터 앞에서 망설이다 쌓인 업무를 확인한 뒤, 작은 다짐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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