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 그리고 지금 한 끼
습하지만 아직 덥지는 않은 시간.
쿼카 가족들은 아침을 먹기 위해 동그란 상 앞에 도란도란 앉아있다. 어린 동물은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잠을 깨보고자 하지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 고개까지 까딱이기 시작했다.
김이 폴폴 나는 찌개를 가져오던 엄마는 김쿼카를 발견하고는 상에 뚝배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등짝에 스파이크를 날렸다.
그 세트인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김쿼카, 빨리 밥 안 먹어? 힘들게 다 차려놨구먼. 여기서 졸고 있네. “
쿼카는 아픈 등을 비비더니 뚱해진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나 좀만 더 잘래요. 밥도 안 먹고 싶은데.. 반찬도 그냥 그렇고.. 그럼 나 차라리 시리얼 먹을래..”
“시리얼은 무슨 시리얼. 그건 나중에 혼자 살면 먹고 빨리 밥 먹어. 누가 차려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거야. 반찬 투정도 그래. 학교 가서도 그러는 거 아니야? 급식 먹을 때가 행복한지도 모르고 배가 불렀지 아주.”
어린 동물은 불이 활활 켜진 듯한 엄마의 눈동자를 보더니 시무룩해진 얼굴로 꾸역꾸역 입에 밥을 넣었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몰래 말대답을 했다.
‘참나.. 흥. 먹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무슨 행복이야. 빨리 어른 되어서 먹고 싶은 거 다 해 먹고살아야지.‘
그리고 N 년 후..
오후 6시. 김쿼카의 퇴근 시간
하루 종일 쨍쨍거렸던 햇님의 열기와 정신없던 업무로 흐물 해져 버린 동물은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 입맛도 없지만 대충 때운 점심 때문인지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느릿느릿 주방으로 향해 시리얼 봉지를 들던 쿼카는 점심에도 시리얼을 먹었단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잠시 멈칫한 동물은 봉지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러곤 요즘 자신이 먹은 것을 머릿속에 하나씩 나열해 봤다. 샐러드, 시리얼, 아이스크림, 배달이 늦게 와 퉁퉁 불은 냉면.. 냉동실에 오래 묵었던 냉동식품 정도뿐. 제대로 된 든든한 한 끼는 어디에도 없었다.
요즘 김쿼카는 더위에 지쳐, 요리도 외식도 피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있다. 불을 쓰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다.
찌는 날씨에 입맛도 없지만 한동안 계속된 부실한 끼니에 뱃속도, 마음도 어딘가 허해진 느낌이다. 잠시 생각하던 쿼카는 냉장고와 찬장을 뒤적거려 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살핀 끝에 나온 말라버린 파, 엄마가 보내준 들기름과 김치 조금, 건강식으로 먹으려고 언젠가 사뒀던 막국수 한 줌.
“그래. 오늘 저녁은 들기름 막국수다! “
쿼카는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먹었던 것들에 비하면 충분히 훌륭한 식사처럼 느껴졌다. 김쿼카는 설레는 얼굴로 꼬리를 살랑거리며 냄비 앞으로 다가갔다.
보글보글 끓인 물에 면을 삶고 조금 남은 김치와 물로 씻음 파를 가위로 작게 잘라 그릇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면을 삶은 뒤 찬물에 씻어 들기름과 함께 담아내면 완성!
동물은 오랜만의 요리인만큼 인증샷을 남기고 선풍기 앞에서 호로록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고소한 들기름에 아삭한 김치, 차가운 면까지. 최근에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네. 움직이기 잘했다. 냠냠. 엄마가 주신 들기름이랑 김치가 있어서 다행이야.’
짧은 상념 끝에 한참을 오물거리며 식사에 열중하던 동물은 문득 졸렵다며, 마음에 드는 음식이 없다며 차려준 정성 앞에 투정 부리던 그때가 떠올랐다. 더운 여름날 뜨거운 가스레인지 앞에서 홀로 뽈뽈 움직였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괜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지금이다.
소소한 에필로그)
그날 이른 밤, 유일한 생명체가 새근거리며 잠든 고요한 방 안. 핸드폰 화면에 뜬 문자메시지 알람음 하나가 적막을 깨웠다.
[엄마] : ” 연락 좀 해.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또 귀찮다고 때우는 거 아닌가 몰라.
집에 반찬 해둘 테니까 주말에 귀찮아도 잠깐 들르렴.”
돌아온 월요일.
김쿼카는 여전히 따뜻하고 그 변함없는 마음 덕분에, 든든하고 시원하게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