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범위까지 확장해서 말이다. 이는 우주적인 차원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한 사람이 작은 것을 보고 거기서 어떤 우주적 행복과 연결되는 작은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무라카리 하루키처럼 큰 포부나 야망 없이 항상 자잘한 것에 심리적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면 더 나은 자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자기한테 얼마나 큰 포부와 야망이 있는지 이 것을 살피는 데 집중해야 한다.
큰 포부를 펼치는 과정에서 얻는 작은 행복들이 자기에게 행복을 줄 때 의미가 있다.
그냥 작은 것을 얻을 때의 행복이 아닌 심리적 만족 상태. 이 것을 전제적 행복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나의 생각>
나라는 사람은 평소에 말 그대로 소소하고 확실한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교수님 말씀에 바늘에 찔리듯 뭔가에 찔린 기분이 들었다.
심리적 만족으로 그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큰 포부와 야망이 있는 걸까?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만큼은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내가 목표로 하는 눈높이도 높았고, 이를 위해 발버둥 치듯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목표가 나를 만들었고, 이 목표를 얻는 과정에서 느꼈던 작은 휴식, 여유가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컸던 것 같다. 결혼 후 육아와 함께 불가피하게 퇴사를 하고 보니 과거의 치열했던 삶이 그립기도 하다.
퇴사하고도 그 미련이 잔상에 계속 남아 늘 뭔가에 쫓기듯 다음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이 나의 큰 포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 과정 속에서도 행복과 연결하기 위해 나를 돌아보고 쉬어가는 소확행은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풍요로운 세상이다. 우리는 삶의 전략을 생산하지 않고, 생산된 결과들을 가지고 와서 빌려서 살았다. 이를 두고 따라 하기라고 한다. 우리는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지식 수입국이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본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며 살면서 문명을 여기까지 번영시키고 발전시킨 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보다 높은 단계는 이제 생산하고, 생각하고 꿈을 꾸어야 한다.
남의 꿈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꿈을 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죽기 전까지 내가 완수해야 되는 소명은 무엇인가?
이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자기만의 고유한 답을 하려고 발버둥 쳐야 한다.
이것을 해야 생각하고 창의적, 도전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나는 하루동안 얼마나 생각해 왔나?
사실 매일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오늘 하루는 얼마나 생각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본다.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전업맘으로 살면서 뇌를 풀가동하지 않으며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왔고, 그저 지금의 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편했기 때문에 심도 깊은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저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머무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날 하루의 끝도 그저 무의미했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했지?라고 하루를 돌아보는 날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특별하진 못해도 나름의 이유로 의미 있게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나를 위해, 내 꿈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달려가고 싶다는 답을 찾았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는 전제 조건에서 말이다.
건너간다는 건 무엇이고 건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요?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다. 건너가는 존재는 승리하고 멈춘 자는 고갈된다. 질문은 건너가는 일이다. 대답은 멈추는 일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문의 결과이다. 대답의 결과로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주인은 건너가는 자다.
건너기 위해서는 건너가고 싶어 해야 한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의욕이나 욕망이 없으면 멈출 수밖에 없고, 건너갈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건너가는 자가 되겠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나는 나로 완성되겠다'라는 마음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완성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향해서 걷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부단히 건너가는 사람이 승리자다."
<나의 생각>
건너가는 존재라는 단어 자체가 신선하면서도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질문은 건너가는 일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들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평소에 나에게 질문을 많이 건넨다.
어쩔 때는 "그만 좀 물어봐. 엄마라고 다 아는 게 아니야"라고 했던 나의 단호한 말투가 생각나면서 미안해지기도 한다.
특히 첫째는 호기심이 많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재밌는지 수수께끼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일이 많다.
'순수한 아이들 눈에는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을까?' 지금은 엄마가 세상이고 엄마가 답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텐데......
아이들의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도 모르는 것에 대해 스스럼없이 알아가려고 애쓰며,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져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
"책을 읽으면 잘 건너가 질까? 건너가려면 건너가는 수준을 유지하고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건너갈 그곳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건너가려는 의지, 동력, 야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내공이라 한다. 건너가려는 자가 되려면 지식과 내공이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일은 독서밖에 없다. 당신이 읽지 못 한 책이 몇 권인가? 책 읽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
책은 인내, 소통능력, 대화능력, 직역 등 모든 것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 읽는 일은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일종의 수련이다.
이 수련을 통해 지식, 내공이 갖춰지고 효율적인 건너가기가 가능하다.
독서는 마법의 양탄자다. 가본 적 없고, 있어본 적 없는 곳으로 내가 양탄자를 타고 이동해 있다.
이를 건너가 있다고 한다. 독서는 건너가기를 가능하게 해 준다. 당신은 독서를 통해 어느 순간 위대해져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사실 독서 자체를 좋아하면서 책 읽기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올 초에 한 달에 1권을 목표로 호기롭게 도전은 했지만, 책 한 장 넘기는 일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인 걸까? 이 도전이 잘 지켜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단순히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읽는 수준으로 되다 보니 책에 온전히 집중이 안 됐고, 책 내용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과정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책 읽는 일이 수련이라고 하니 수련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인격을 닦아서 내면의 나와 마주하여 부단히 단련해 나갈 필요성을 느낀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강의와 매일 글쓰기 미션을 통해 필사라는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저 활자의 글들을 눈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필사를 통해 내 기억 속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 생각하게 되고, 그 책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독서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통해 지식과 내공이 단단히 갖춰진 미래의 위대한 나를 슬며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