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마음을 치유하며, 행복을 나누는 시간> 프로그램 첫 시간에는 강사님이자 시인의 시 오래된 신발을 낭송했다.
오래된 신발
진순미
오래되었다는 말속엔
따사로움이 들어 있다
세월에 낡아지고 시련에 긁혔다는
그런 말과 통해서, 왠지
버릴 수 없다
사람의 동행도 오래될수록
정이라는 말과 함께, 왠지
편안하다
낡고 긁힌
오래된 신발 속 흠집
누군가에게 편안함으로
자박자박 기울고 있다
누구나 오래된 물건, 오래된 지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 속엔 공통적으로 '따사로움'이 있지 않을까.
이 시를 한 사람씩 낭송해 보며, 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강사님은 소탈한 웃음으로 "이 시 너무 좋지 않아요? 내가 썼는데도 낭송해 보니 느낌이 또 좋네요"
자신을 너무 사랑하시는 시인님.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듯 항상 해피바이러스를 뿜뿜 하시는 시인(강사)님 덕분에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는다.
첫 과제로 나는 가을에 대한 시를 지어봤다.
가을 하면 햇과일이 생각나지 않던가. 햇과일은 당해에 새로 난 과일을 뜻한다.
우리 수업은 9월부터 시작됐기에 가을을 막 맞이한 느낌으로 햇+가을을 조합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은 <햇가을>로 정해보았다.
햇가을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은
한낱 그리움으로
그렇게 기다렸던 가을은
한 뼘 새로움으로
낯설다
저녁녘 불어오는 바람은
나의 두 볼을 감싸는데
차갑다
메말랐던 마음속 바람은
나의 온몸을 감싸는데
여문다
과실과 곡식들 모두
딴딴히 잘만 익어가는데
갈피 못 잡던 속정
한껏 붙들고
나도 이내 제자리에
나의 첫 자작시에 대한 합평이 이어졌다. 1~2연은 괜찮은데 3, 4, 5연의 '낯설다' '차갑다' '여문다'라는 문장으로 갑자기 시작하니 이 시의 운율적 요소를 방해하고, 시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보다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문장들을 모두 뺐다. 그리고 마지막 5연의 과실과 곡식들 모두라는 표현보다 "여물어가는 곡식"으로 표현하는 게 낫겠다는 합평을 해주셨다. 마지막 연의 "갈피 못 잡던 속정 한껏 붙들고 나도 이내 제자리에"라는 표현보다 가을이라는 주제를 살려 마무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대다수의 의견이 있었다.
햇가을이라는 제목보다 그냥 가을로 가는 게 낫겠다는 시인 님의 말씀도 따랐다.
이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다시 재탄생한 <햇가을>이 아닌 <가을>을 소개한다.
가을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
한낱 그리움으로
그렇게 기다렸던 가을
한 뼘 새로움으로
저녁녘 불어오는 바람은
나의 두 볼을 감싸는데
메말랐던 마음속 바람은
나의 온몸을 감싸는데
잘 여물어 가는 곡식들
길을 비추듯
익어가는 나의 계절
처음보다 훨씬 다듬어진 <가을>이란 시가 탄생했다.
처음의 <햇가을>을 창작했을 때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을 지나고 고대했던 가을을 맞이하니 그리움과 새로움의 복합적인 감정을 넣고 싶었고,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느낌이 좋아 나의 바람을 비추어 보았다.
잘 여물어 가는 곡식들이 길을 비추듯 나도 그렇게 익어가는 가을이 되기를 바라면서.
에세이를 오랜 시간 써왔지만, 퇴고의 연속 과정이다.
글을 들여다볼 때마다 고칠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허나 시는 참 모르겠다.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더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이러한 합평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시를 통해 내 마음을 비추어 보기도 한다.
감정이 메마른 것 같을 때 항상 시집을 펼쳐본다.
나는 이내 한 편의 시 속으로 빠져든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수많은 감성들.
그런 감성을 자극하는 시어들. 그렇기에 나는 시를 사랑하지 않을까.
시를 배우고 공부한 지 겨우 9개월 차 초보.
그렇기에 나는 겁 없이 시를 끄적여보고 있다.
알면 알수록, 머리가 복잡할수록 어려운 것이 글쓰기 아닌가.뭐든 배우겠다는 초보의 자세로 오늘도 나는 시와 에세이를 끄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