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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을 쓰는 작가 Jul 08. 2024

내 낡은 일기장

22년 전으로

 <2002.8.29. 월>


오늘 난 결심했다.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일기를 쓰기로. (중략)
오늘은 9시까지 친구 집에서 놀았다.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지금쯤 공부한다고 바쁜 친구들도 많을 텐데.....(중략)
남자 생각 버리고 공부만 열심히 해야지!
낼은 후회 없이 보내자! 아자아자!



 무려 22년 전에 쓴 낡은 일기장을 꺼내어 보는 순간이다. 때는 고 1. 유독 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마음도 성적도 모두 불안했던 시절. 거기다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만난 첫사랑과의 헤어짐으로 지독한 사랑앓이를 겪어서 '남자 생각 버리고'라는 일기 내용이 유독 눈에 띈다.

참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싶은데 그때는 세상 진심이라 거리마다 그 친구를 행여 다시 마주칠까 애타고, 대학생이 되어 다시 예쁘게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 일기장은 2002~2006년까지 총 5년 간의 공부 기록, 친구 관계,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학업, 친구,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 속 요동치는 감정들이 나만의 문체로 생생히 전해진다. 결혼하고도 두 차례 이사하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마성의 일기장이자 이제는 빛바랜 일기장. 유독 이 일기장만큼은 왜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수했던 시간들이 그리운 것일까. 풋풋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지금의 남편을 만난 소중한 시간들이 기록되어서 그런 것일까. 아마 모든 게 해당되지 않을까.


 집안의 장녀로 겉으로 힘들다는 내색 없이 그저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이었고, 하나 있는 남동생은 뛰어난 운동 신경 덕분에 배드민턴 부산 대표 선수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특출 재능이 없었던 난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악착 같이 공부했다. 그렇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았던 공부였고, 일기장을 친구 삼아 막막하고 힘든 마음을 글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도, 슬픔을 환희로 바꾸는 방법도 몰랐기에 나만의 생존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던 것이다.


 추억 속 빛바랜 일기장 마지막 장에는 무려 사랑에 대한 '시'까지 적혀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를 적었던 것일까.

현재 나는 한 달에 2편씩 자작시를 올려 합평을 함께 하는 시(詩) 모임을 하고 있다.

22년 전 나의 시를 감히 평하기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경험만큼 또 값진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랑의 아픔을 글로 생생하게 표현한 '시'라서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일기가 가진 매력일 것이다.


 이처럼 10대 풋내기의 일기장 속에는 잊고 있었던 감성 어린 소녀가 살고 있었다.

지금은 두 아들의 엄마로 씩씩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다들 나처럼 풋풋하고 예뻤던 시절이 한 움큼씩 있지 않을까. 현재도 글을 쓰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 시절 그때처럼. 어쩌면 하루를 기록하는 일상을 10대부터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지.

10대의 나와 불혹을 코앞에 둔 커다란 삶의 변화 속에서도 공통점을 찾는다면, 바로 글쓰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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