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새의 마음을 따라가 보니 과거의 사춘기 고등학교 시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발버둥 쳐도 다른 친구들과 발맞출 수 없고, 늘 나만 뒤처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던 내 모습과 오버랩된다.
나 또한 뒤처진 새의 입장을 이미 겪어보았고,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에서 한 내담자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저는 19살인데 남들 다하는 공부 저는 포기해서 안 하고 있고, 부모님께서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무기력해질까 봐 추천해 주신 댄스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덧붙여 " 저는 앞으로 살아갈 이유가 없고 너무 힘들어서 내년 3월 자살을 계획하고 있어요."
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런 청소년에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대답해 줬다.
"우와, 비록 부모님께서 추천해 주셨지만 꾸준히 하는 걸 보니 춤에 재능이 있구나. 멋지다. 지금은 공부를 잠시 멈추고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해. 조금 느린 것뿐이야. 괜찮아. 30대인 나도 아직 공부하고 있는 걸?? 공부야 네가 시작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다시 시작해도 돼. 19살, 어리기에 언제든지 빛날 수 있는 나이고, 너는 너 자체로도 이미 충분해."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남들과 굳이 발맞추려 하지 않아도, 느린 속도로 가는 것도 괜찮은데 10대인 나에게 어느 누구도 그렇게 위로해주지 않았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정규수업 및 자율학습 시스템. 새벽부터 떠지지 않는 두 눈을 겨우 겨우 뜨고, 힘겨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의무적으로 학교를 가야만 하는 매일매일을 마주하는 건 고통이자 지옥이었고, 성적이 곧 행복의 지표였던 그 시절.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오르지도 않는 참담한 성적표로 새까만 미래밖에 그려지지 않았던 나는 엄마에게 자퇴만을 고집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조금만 참아보자"라는 말에 실망감을 끼쳐드리기 싫은 장녀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현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버거웠다.
‘많이 느리지만 어떻게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는 나였을 텐데......'
'그 내면의 힘을 끌어주고 내 힘든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려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이번 상담을 통해서 더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내담자에게 그렇게 진심을 담아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전영애 교수님은 라이너 쿤체 시인을 이렇게 평한다고 한다. “키 작은 풀 하나도 그렇게 주의 깊게 따뜻하게 들여다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과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렇기에 그것에 반하는 인간의 불의와 폭력에는 저항하는, 섬세하고 따뜻하고 기은 눈길을 가진 올곧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전영애 교수님이 이 시인을 이렇게 평한 것처럼 뒤처진 새의 날갯짓, 몸짓, 느림의 미학, 고유의 특성 등 작은 요소 하나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고, 주의 깊게 따뜻하게 누군가에게 내 힘을 보탤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