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이면서 타투를 소유한 사람은 적지 않아서 나는 타투가 퀴어 자격증이 아닌가라는 싱거운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퀴어답게(?) 2년 전 첫 타투를 받았다. 스무살 때부터 품어온 호기심이 공교롭게도 게이임을 받아들인 시기에 터져버린 것이다. 타투를 받기로 결정한 때를 돌이켜 보면 우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었다. 모아놓은 군 적금이 두둑했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타투 생각만 할 수 있었다. 고민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Yes를 선택할 확률도 늘어났고 어느 날 타투를 한다는 경우의 수에 당첨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타투를 말그대로 질렀다.
무섭지 않았던 건 아니다. 타투를 검색하면 이 세계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만류하거나 후회를 고하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돌이키기 어려운데 어떤 따가운 시선이나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리스크 앞에선 당연한 일일 테다. 타투를 한다는 건 스스로 이방인이 되는 걸 감내하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앞으로의 삶이 명료하게 불편해질 걸 알면서도 네가 추구하는 길을 걸어갈 것이냐는 거대한 물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이 아닌가. 너 게이로 살테냐? 수백 번 들어서 지긋지긋한 질문과 똑같이 생긴 놈. 그때의 내 대답은 '어쩌겠어요. 남자에게 계속 눈이 가는 걸'이었으므로 이번의 내 대답도 '어쩌겠어요. 타투에게 계속 눈이 가는 걸'이었다. 이미 한 번 어지러워진 삶을 이중으로 어지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만, 과연 얼마나 후회할까하는 모종의 자신감 역시 있었다. 이미 게이로 살고 있어 알게된 바 남들이 예견한 불행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퀴어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릴 비정상이라며 더럽고 힘든 무엇이라고 가정한다. 막상 퀴어가 되고 나니 세상을 뒤집을 깜냥이 내겐 없다는 걸 가장 먼저 깨달았다. 여전히 산책과 술과 책을 좋아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기가 빨리며 이제 졸업인데 뭐 먹고 살지를 걱정하는 내게 그런 힘이? 차라리 그런 능력이 생겨서 이름 난 빌런이 되면 좋겠다. 어쨌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만 없으면 큰 불편이 없으므로 퀴어라서 힘든 게 아니라 퀴어라서 겪게 되는 차별로 힘들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적어도 내가 감당 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타투는 나를 표현하는 데 중요하고 어여쁜 수단이 됐다. 동화 느낌의 동식물 타투를 받고 있는데, 내가 떠올리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간직하고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심리적인 공허함을 애정하는 이미지로 메꿀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타투는 내 선호와 마이너함을 선언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커밍아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족이 타투를 예뻐했을 땐 큰 위안을 받았다. 어느 날엔 70대 청소 미화원께서 너무 예쁘다며 자기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을 걸길래 어리둥절 하며 용기를 전한 적도 있다. 그때부터 세계는 각박해지는 동시에 너그러워지기도 한다는 걸 믿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갈수록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이지만 왜인지 타자와 친밀해지고 있다고 느낀 것도 그쯤부터다.
타투에서 느껴지는 모종의 회복력. 나는 타투가 자해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 적 있는데, 앞선 경험들은 자해의 파괴성보다 회복성에 더 눈길을 가게 만들었다. 자해는 나를 소모시키는 행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의 감각은 매우 생동하다. 감내할 수 있는 상처라면 회복할 때 그 부위는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마치 운동의 원리가 근육을 찢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는 것인 것처럼. 그럴 때면 나는 삶의 매커니즘이 자해는 아닐까하는 급진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상처를 주고, 봉합하고. 상처를 받고, 봉합하고. 나는 타투라는 예쁜 상처를 내면서 몸과 마음의 치유력을 목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살려고 하는 발길질을.
타투가 거대한 문제가 되는 공간엔 나 역시 속하고 싶지 않다. 타투가 오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싶다. 그렇지 않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도 삶을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일테니까. 어쩌면 나는 포기가 숨겨놓은 미덕의 끄트러미를 발견한 것일지 모른다. 거기 삶의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고 나는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