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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해 Sep 30. 2024

2. 내 안의 정치성과 싸우기


몸을 둘러싼 고질적인 시선을 조명하면서 시리즈의 포문을 열고 싶었다. 나름의 획을 수정한 이유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정치성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글은 퀴어라는 재료를 잘 다듬어 완전무결의 맛깔난 요리로 내보이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당신의 생각과 달리 위험하지 않고 크게 다르지도 않으며 이게 좋고 저게 좋고 따위의 말들을 열거해 버린 것이다. 세상에 그런 완벽함은 존재할 수 없단 걸 알면서도 다급하게 고결함만을 내세웠다. 그렇게 써진 문장들은 겉은 그럴싸해 보이나 왜인지 공허한 정치인의 연설문처럼 느껴졌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게 건 아득하게 화려한 모습보단 익숙하게 초라한 모습을 목격했을 때임을 기억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추적추적하게 퀴어한 삶을 배우고 있고 당신들이 침투하기도 쉬운 빈틈투성이라고 먼저 고백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나는 왜 철옹성처럼 빈틈없어 보이려 했을까. 아마 반사적인 생존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변두리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 세상의 규칙이 아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로 치환될 수 있단 걸 뼈저리게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소외된 인간은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동물이 평소보다 몸을 부풀려 포식자의 위협에 대응하듯 위세를 부린다. 모름지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윤리와 정의를 꺼내 들면서. 하악질을 잠시라도 멈추면 쉽게 무시되고 짓밟히기에 그들은 없는 힘을 쥐어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 신경을 거스르는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태도는 그렇게 탄생한다.


그런데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호걸한 정치성이 슬프다. 매 순간 강하고 무결하기엔 인간은 너무 연약하단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면에선 윤리적,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산다. 어떠한 악영향도 없는 행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연쇄되어 해를 끼칠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의 폭력성도 용납하지 못하고, 심지어 혼자 있을 때조차 정치적인 예민함을 지킨다는 건 자신을 가혹히 소모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변두리의 인간은 도무지 이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건 언젠가 나도 배제될 거란 걸 인정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나는 그런 불안을 비건 지향을 하며 생생히 느꼈다. 비건을 시작한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먹는다는 간단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상상 이상의 폭력이 동반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던 것 정도가 기억난다. 그리곤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와 죽음을 경험하는 동물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든 나에게로 향할 수 있는, 그리고 이미 향해 있기도 한 칼날이 나를 베어버리지 않길 바랐다. 다음 순서는 나라는 두려움이 동물들의 고통을 잊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나의 비건 지향은 시작했다.


한편 어떠한 맥락도 알지 못한 모부에게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자식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파격적인 선언이 끝나자마자 설득과 책망이 쏟아졌다. 골고루 먹는 게 좋다는데. 고기를 안 먹고 힘이 없어서 어떻게 살 건데. 사랑에서 탄생한 말이지만 나에겐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응원은 못 해줄망정 서운하다거나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 잔소리하지 말라며 으름장으로 응수했다. 물론 비건 지향은 무척 힘들고 어려웠다. 피곤하고 시간이 없는 날에도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위로를 주던 음식의 목록도 바꿔야 하며 무엇보다 가까운 이들과 빈번히 갈등을 겪어야 했으니까. 낯설게 변한 나의 일상을 윤리와 불안으로만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역시 고기는 먹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포기하기는 싫어서 외로움과 불편함을 함구하거나 도둑처럼 해결했다.   


필연적인 연약함을 습관적으로 은폐하다 보니 힘듦을 말할 수 없는 고독과 감정을 잃어버리는 위험이 찾아왔다. 힘들단 걸 내색해도 의심과 조롱과 비판을 하지 않을 누군가를 찾지 못한 나는 홀로 되기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한 이는 때론 억척스럽게 외로움을 달랜다. 귀찮으니까 고기를 먹겠다니 의지가 박약하다. 귀찮으면 안 된다. 정말 귀찮은 게 맞는 건가. 귀찮다고 핑계를 대고 싶은 건 아닌가. 그건 올바르지 못하다. 나는 가장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밀면서 자연히 피어나는 감정을 의심하고 외면하고 폄하했다. 그 모든 고통이 신념과 정의를 지키는 수행자의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모종의 강박만이 남은 나는 어떤 것도 느껴서는 안 될 죄인과 같았다. 


이런 비건은, 이런 집념은 풍부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내가 내 안에서조차 바로 설 수 없을 때 나는 내 안의 정치성과 싸우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나와 누군가의 연약함을 관용하지 않는 정치성과 겨루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포기를 말하기 위함이 아닌, 어쩔 수 없음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제야 우리의 대화가 시작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 대화가 절실한 존재들이 더 풍부한 너그러움을 경험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 자기 안의 징그럽고 흉측한 마음까지도 구태여 안아주며 정성스럽게 멀어질 이유가 우리에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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