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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Nov 30. 2023

불안 2

6번째 정신과 진료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유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제때 오셨네요."


"네, 약이 다 떨어져서 꼭 와야만 할 것 같더라고요."


"요새는 잘 주무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제 매일 수면제를 먹으니 분명 잘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잘 자는 날도 분명 늘긴 했는데, 수면제를 먹어도 절대 제때 못 자는 날도 생기더라고요. 면역이 생긴 건지."


"음... 주무시는 시간은 일정하게 하고 계시고요?" 


"네, 12시에 잠자리에 드는 건 도통 안 되니 1시에 고정적으로 자고, 8시쯤에 일어나는 거로 습관화하려고 하고 있어요. 근데 일어나는 시간이 너무 불규칙적이더라고요."


"일어나는 시간이 어떻게 되시죠?"


"아침부터 일이 있는 날에는 알람을 대여섯 개는 맞춰서 겨우 일어나는데 못 일어나는 날에는 오후까지 자버려서, 12시간 너머 자게 되는 날도 있어요.


"수면의 질은 문제없으시고요?


"짧게 자는 날은 온종일 멍한 느낌이에요. 그럴 땐 담배에 의존해서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일을 하고 있고요."


(알아볼 수 없는 메모를 휘갈기신다)

"음... 불안감이나 우울감은 어떠시고요?"


"요즘 유독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죠?" 


"불안이나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일들이 되려 저를 더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더욱 키워서 자리를 잡으면,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분명 해소될 거로 생각했는데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더 악착같이 잘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계속 저를 쫓는 것 같아요."


"요즘 하시는 일을 보면 그렇게까지 쫓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제겐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이제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그만큼 저는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고, 이 일에 정착하고 싶다는 욕심도 너무 커져 버렸어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니면 안 돼요. 그런데, 일 외에도 주변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요. 인간관계라든지, 하고 싶은 일 주변에 따라붙은 해야만 하는 다른 일들이라든지 등등.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도 충분히 체력을 많이 뺏기는데 다른 일들에서는 훨씬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느낌이에요."


"그러면 조금씩 기대치나 목표치를 낮추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진 못할 것 같아요. 못해요. 뭔가, 강박감이 있어요. 친구로서도, 연인으로서도, 함께 일을 하는 동료로서도 모두 잘 해내고야 말겠다는, 잘 해내야만 한다는 그런 강박이. 어느 하나라도 어그러져서는 안 될 것만 같아요. 그런 생각 탓에 어디선가 틀어지는 느낌이 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요. 마치 머리가 산산이 쪼개지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 땐 당장이라도 그걸 해결해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제 시간과 체력을 아득히 많이 소모해야 하건, 돈을 쏟아부어야 하건, 어떤 식으로든 말이죠."


"이전보다 더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신 것 같네요."


"네. 그런 것 때문에 잠을 여전히 못 자는 것 같기도 해요. 침대에 누우면 무언가 놓친 일은 없는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이 들어요. 그런 생각 끝에는 항상 모조리 던져버리고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지고요."


"이전에 말씀하셨던 자살 충동 같은 건가요?"


"비슷한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은 제가 짊어진 게 많으니 그렇게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하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최소한, 지금 하는 일들은 다 정리를 하고 시도하려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엮여있는 일들도 많고, 관계도 무척 깊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나같이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들이라서요. 만약 사후세계가 진짜로 있어서 자살 시도에 성공하더라도 또 똑같이 죄책감과 강박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도 정말 끔찍한 지옥일 것 같네요."


"흠... 알겠습니다. 약은 전반적으로 투여량을 늘려야겠네요. 안정제와 항우울제, 수면제 모두 조금씩 강한 걸로 드릴게요. 빼먹지 말고 잘 챙겨 드시고요."


"네." 


"그리고 이번에도 투여량을 늘렸으니 2주 분만드리겠습니다. 이후에 다시 한번 경과를 살펴보고 이대로 이어갈지 다시 한번 변경할지 결정하도록 하죠."


"(언제 또 시간을 내서 와야 할지 잠시 생각한다) 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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