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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Oct 01. 2022

엄마가 지금 딱 50세였음 좋겠다

당신의 나이는 많은 편인가요?

엄마 나이 58, 내 나이 30에 우리는 쿠킹스튜디오를 함께 시작다. 그리고 시간은 정말 문자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 어느덧 올해 엄마 나이 61, 내 나이 33.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빠를 만나 결혼한 엄마는 평생 전업주부로 가족에게 충실하셨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아빠를 위한 내조는 물론, 나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부족함 없이 챙겼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30대 시절부터 취미로 집에서 요리와 베이킹을 즐겨했고 그때부터 홈베이킹, 홈쿠킹클래스를 하며 주위 가까운 지인들과 좋은 시간을 자주 보냈다. 손재주와 솜씨가 야무진 엄마를 주위에선 가만 놔두질 않았고 우리 집은 사랑방처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곤 했다. 아빠가 직장 해외 바이어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면 우리 집에는 뷔페가 열렸다. 한식이면 한식, 양식이면 양식, 디저트면 디저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엄마가 혼자 뻑적지근하게 차려낸 것이다.


나 또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집에는 늘 엄마와 지인들이 거실 식탁에 둘러앉아 다과를 드시며 담소를 나누던 모습이 익숙했다. 학교 시험성적이 나쁜 날에는 슬그머니 식탁 한가운데 성적표를 올려두고 내 방으로 도망쳤던 어릴 적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라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아는 꼼수였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의 지인들은 깔깔 웃었고 엄마는 나의 부족한 성적표를 접어 치워 두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더 커서 사춘기 학생 때'오전에 또 누가 집에 왔었냐'고 뾰족하게 대들었다가 엄마가 '집에 사람들이 밝게 드나드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럼 우중충하게 조용한 집이 좋아?' 하고 맞받아쳤던 기억도 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그때만 해도, 그리고 그 한참 이후로도 엄마는 당신이 중장년의 나이에 요리연구가가 되어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매일 요리를 가르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엄마를 보며 자라난 나는, 본인이 맡은 일을 사랑하고 맡은 바 끝장을 보고야 마는 소위 지독한 완벽주의자 성향을 똑 닮았다. 나는 그런 나의 성격이 제법 맘에 들고 나에게 이런 영향을 준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다. 그리고 우리 모녀의 이 바지런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온 마음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아빠와 동생에게도 늘 감사하다.




참으로 별난 특징이고 한국인의 종특인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독 나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15살만 해도 반 30이네, 25살에는 반 50, 30살이면 반 60이다, 하면서 늘 '나는 나이가 많다'는 프레임에 갇혀 평생을 지내는 느낌이다. 물론 틀린 계산은 아니지만 굳이 나이에 그렇게 민감할 필요 있을까.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5년 뒤에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심한 비약일 수 있지만 세월에 상관없이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고.


엄마는 50대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본격적인 외부활동을 벌였다. 나는 30대를 맞아 직장인이 아닌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자잘한 공부와 취미들을 연계하며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누군가는 20대가 넘어 다시 수능을 공부하고, 누군가는 30대 중반에 대학원을 들어가고, 누군가는 40대가 훌쩍 넘어 결혼을 결심한다.


제각각 다른 인생이 있고 삶의 방향이 저마다 다르다는 걸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면서도, 정작 그게 내 문제로 돌아오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참 힘들어진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에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아서', 창업을 하기엔 이제 '내 체력이 너무 딸려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내 나이가 좀 마음에 걸려서', 등등. 하다못해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을 하려는 데도 '내 나이가 많아서 주위 눈치가 보여' 하는 판.


엄마 주위엔 엄마를 믿고 따르는 동종업계의 선후배 지인들이 주위에 많이 계시는데, 위와 같은 이유들로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이 많다. 엄마 역시 늘 마지막에 전하는 결론은 '시도해봐', '한번 해봐', '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잖아'.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그런 엄마도 나랑 둘이 있을 땐 투정 부리듯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딱 10년만 더 젊었어도! 내가 지금 딱 나이 50만 돼도 좋겠다, 그럼 지금보다 펄펄 날아다닐 텐데!' 이렇게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면 금방 5년, 10년 흘러 나이는 70대에 접어들 것이고, 갈수록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른다는 얘기를 종종 나눈다.


엄마 그건 나도 무서워. 엄마가 50세로 돌아가면 나는 22살인데, 지금 이 일을 같이 하기엔 내가 너무 어린 것 같아. 나는 지금 내가 30대인 게 좋거든.


'그치만 지금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바쁜 60대 여자잖아' 밤 10시에 함께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종종 엄마를 놀린다. '지금 이 시간에 60대 여자는 집 밖돌아다니지 않아, 엄마 어디 가?'


엄마의 70대도 너무나 멋질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타고난 성향은 잘 안 바뀌니까. 이 30평 남짓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참새처럼 뱅글뱅글 종종 걸어 다니며 하루 1만보를 걷는 엄마, 앞으로 건강만 하자며 오늘도 그녀는 아들이 쟁여다놓는 홍삼엑기스를 마시며 빼곡한 스케줄을 체크한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매일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며 이야기하고, 요리하고 수업하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고, 냉장고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늦은 시간 귀가를 한다. 또 다음날 아침 일찍 어김없이 출근을.

 

"여러분, 이게 지금 60대 여자가 할 짓입니까?!"

"네에!" 


수강생들의 신나 하는 답변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기는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들의 쿠킹스튜디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딸의 첫번째 브런치북을 이렇게 완성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 많지만 일단 첫번째 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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