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기 전에 목욕부터
퇴근길이라 길이 꽤 막혔는지 동생은 9시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동생이 메시지와 함께 보내준 사진으로 믹스견 1마리와 시츄 1마리라는 정보 정도만 알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 뒷문을 여는 순간…!
“오는 동안 둘 중 하나인지 둘 다인지가 똥을 쌌어.”
두 마리가 함께 들어있는 켄넬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개똥 냄새가 이렇게까지 심했던가?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똥 범벅이 된 켄넬 내부가 보였다. 녀석들의 몸에 묻은 것도 분명 무늬는 아니겠지.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마리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서둘러야 한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 차에 밴 냄새도 나중에 빼자. 일단 이 녀석들을 집으로 옮겨야 한다. 두 마리 무게에 본체 무게까지 합쳐 약 20kg 정도 되는 켄넬을 둘이서 낑낑거리며 들고 엘리베이터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집까지 직행, 아니 욕실까지 직행.
욕실 문을 닫아 출구를 차단한 후 켄넬을 열었다. 겁을 먹었는지 두 마리가 꼭 붙어 있었다. 애잔함을 느낄 새는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끼고 있었음에도 강력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냄새 때문에 두 마리 모두 욕조행을 피할 수 없었다.
이제 시원하게 목욕 한판 해보실까? …어, 실밥?
“둘 다 중성화한 지 일주일 됐대.”
그럼 조심스럽게 씻겨 보자. 동생이 오는 길에 사 온 펫샴푸가 있어 다행이었다. 물만으로는 도저히 지워질 냄새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빠르게 임무를 수행했다. 이미 욕조 안에 들어온 내가 한 마리씩 씻겨서 건네면 동생이 닦고 말리고, 동생이 사료와 물을 주고 배변패드를 집안 여기저기에 설치하는 동안 나는 켄넬을 락스로 깨끗이 세척했다.
사람까지 모두 씻고 한숨 돌리고 나니 어느새 한밤중이었다. 그제야 둘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전쯤 비 오는 날에 두 마리가 함께 묶인 채 마을회관 앞에 버려졌다고 했다. 나이는 4,5살쯤으로 추정하는데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은 없지만 보호소 설명에는 자매견이라 되어 있었다. 보호소에서 코로나 장염에 걸려 살이 많이 빠졌고, 그래서 냄새도 그렇게 지독했던 거라고.
아무리 좋은 보호소라도 집처럼 좋을 수는 없다. 주인을 잃어버렸든지, 주인한테서 버려졌든지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낯선 환경에 노출된 개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때로는 식사를 거부하거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스럽게 돌봐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보호소에서 질병으로 죽는 경우도 있고, 전염성 질환의 경우 금세 보호소 전체에 퍼지기도 한단다. 보호소 생활이 길어질수록 개가 새로운 가족을 만날 확률은 낮아진다.
한배에서 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집에서 살았던 모양인데 하루아침에 그렇게 버려지다니. 너희들 운명도 참 가혹하구나.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
한바탕 난리를 치른 터라 사람도 개들도 곧 노곤해졌다. 나머진 내일 하자. 굿나잇.
보호소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개들이 모인다. 주인과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린 개부터, 고의로 유기한 개, 키우다가 못 키우겠다고 파양한 개 혹은 들개화되어 포획된 개까지. 공고 기간 내에 원래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입양 신청을 받는데 어리고 예쁜 품종견이 아니면 빨리 가족을 찾는 것이 어렵다. 임시보호를 통해 개들은 보호소 밖으로 나와 다시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운다. 가정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금세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