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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19. 2022

너의 이름은

천천히 가까워지기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한 아이들에게 ‘강아지들’이라며 말을 붙였다. 


“강아지들, 밥 먹을까?”


아무래도 빨리 이름을 결정해야 할 것 같다.


함께 버려졌다가 보호소를 거쳐 우리집까지 오게 된 너희들에겐 어떤 이름이 있었을까. 너희를 버린 주인도 한때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정을 쏟았겠지. 보호소를 나올 때 동물등록칩을 심으면서 구조자가 붙인 이름도 있을 거야. 새 주인을 만나면 또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겠지.


그래도 우리는 우리만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관계의 시작은 이름을 불러주는 것부터가 아니던가. 친해지기 위해서는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불러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간식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는 두 마리가 함께 입양 가기를 바랐으므로 이름이 서로 연결되거나 짝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부르기 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기운을 담은 이름 어디 없을까. 우리만의 진지한 브레인스토밍과 토론이 오고 갔다. 아니, 그건 너무 귀엽지 않아. 아니, 그건 너무 안 어울려.


마침내, 보리와 바비로 낙점!


강아지 이름을 음식명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에 사람 이름처럼 짓는 게 싫었던 취향이 더해진 결과였다. 휴식할 때나 잘 때도 꼭 붙어 있는 모습이 밥알처럼 보이기도 해서 보리밥을 둘로 쪼갰다.


시츄의 이름은 보리가 되었다. 흰색털과 갈색털이 섞인 보리는 유독 먹을 것을 좋아했다. 소심하고 느긋한 편이지만 사료를 꺼내면 재빠르게 달려왔다. 장염 때문에 아직 간식을 주지는 못하지만 분명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크림색 믹스견의 이름은 바비가 되었다. 아기 사슴을 닮은 바비는 긴 다리로 사뿐사뿐 움직일 때마다 팔락거리는 귀와 긴 속눈썹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영리한지 하루 만에 화장실 배수구에 소변을 누고, 화장실 타일에 대변을 쌌다. 손도 척척 주고 공도 기가 막히게 물어왔다.


보리와 바비가 우리집에 적응하는 데는 사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친화력의 소유자인 바비가 우리에게 총총 걸어오면, 소심한 보리는 바비 뒤를 졸졸 따라왔다. 집안 구석구석을 탐험할 때도 바비가 앞장서면 보리는 따라갔다. 아무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쉬웠던 것 같다. 둘은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식사를 할 때면 식탁 아래에, 일할 때는 책상 아래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마냥 해맑은 두 마리 때문에 동생과 나는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유기견에 대한 이미지와 아예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미디어에서 봤던 유기견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채 마음을 닫고, 불쌍하게 벌벌 떨면서 구석에 숨어 있었다. 혹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며 으르렁거려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유기견에게는 문제점이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바꿔 생각하면 평범한 일상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원래 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유기견이 상처를 잊고 잘 살고 있다고 하면 죄책감 없이 버리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를 잊고 새로운 환경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도 더 많이 알려졌다면 좋았겠다. 문제가 있는 개여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버림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라는 것도. 사랑스러운 반려견에서 유기견이 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잘못이라는 것도.


보리, 바비. 너희는 분명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몰랐다. 임시보호자의 진짜 역할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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