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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19. 2022

산책은 아직입니다만

임시보호의 무게


임시보호자의 할일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보호자로서의 기본적인 케어(식사, 배변, 산책, 목욕)부터 필요하다면 미용, 병원까지, 여기에 입양 홍보를 위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때론 직접 SNS를 통해 홍보를 돕기도 한다. 보호견의 기질과 성격을 파악하여 구조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다. 요약하면 보호자의 역할에 입양 준비비가 더해진 것이 임시보호자다.


보리와 바비가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구조자님이 SNS에 올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아기 촬영만큼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동물 촬영이다. 각도에 맞춰 가만히 있지도 않을뿐더러, 개들은 아기에 비해 움직임이 훨씬 많다. 억지로 동작을 만들어본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보리, 바비는 그래도 얌전한 편이라 소파에서 쉬는 모습을 금방 찍을 수 있었다.


급한 대로 사진 몇 장과 동영상을 보내고 우리는 이 녀석들에게 미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저분하게 자란 털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찍은 사진이 녀석들에겐 입양 프로필이나 마찬가지인데,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 아닌가. 우리 눈엔 충분히 귀엽지만 다른 사람도 귀엽게 느끼려면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전에 장염을 해결해야 한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보리와 바비에게 특식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먹는 대로 싸고 있어서 사료만 소량으로 주고 있었다. 첫날보다 나아지고는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미용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성견이라 코로나 장염이 치명적이지는 않다고 하지만 약이라도 먹으면 빨리 회복될 것 같았다.


가까운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고 두 마리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다시 차를 타자 두 마리 모두 불안해 보였다. 출발한 지 5분 만에 보리가 차 뒷좌석에서 응가를 했고, 겨우 수습하고 도착한 병원에서 또 쌌다. 다른 강아지들에게 전염될 수도 있어서 우리는 병원 바깥 테라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수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놔주면서 어쨌든 환경이 바뀌었으니 적응할 때까지 1주일 정도는 산책도 시키지 말고 집에서 푹 쉬게 하라고 했다. 약을 받아 돌아오면서 우리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닌지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 다녀온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자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날마다 보리와 바비의 대변 상태에 대해 논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변은 점점 모양을 갖춰가며 냄새가 줄었다. 그 과정에서 두 마리의 흥미로운 배변 패턴도 파악이 되었다. 둘 다 유독 타일 바닥을 좋아했는데 보리는 현관에 깔아 둔 배변패드에, 바비는 화장실 바닥에 용변을 해결했고 신기하게도 서로의 영역에 실례하는 일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둘은 건강해졌다. 이제 예뻐질 차례다. 서둘러 미용 예약을 잡았다.


“보리, 바비 미용 끝났어요.”


미용을 마치고 깔끔해진 보리와 바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쿰쿰했던 냄새도 사라졌다. 이제 누가 봐도 귀한 반려견이었다. 사진을 찍어줄게. 내일부터는 산책도 해보자. 너희는 새로운 가족을 만날 준비가 됐어.

그리고 다음날, 구조자님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임시보호의 비용

보호소에서 구조된 개들은 대개 동물등록칩을 심고, 중성화수술을 받은 상태로 임시보호자에게 온다. 동물등록과 중성화수술 비용은 구조자 측에서 부담한다. 다치거나 아픈 개들의 경우 연계병원을 통해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구조자 측에서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이외의 비용은 임시보호자의 부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료 및 각종 용품, 미용, 심장사상충 예방약 등등. 입양이 아니라서 돈이 적게 드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개를 키우는 것만큼의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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