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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노동자 Aug 29. 2023

취준생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한양대와 중앙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강의 중 일부 내용 정리


최근에 한양대와 중앙대 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어떻게 광고대행사, 공공기관, 회계법인을 거쳐 증권사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정리했어요.


저는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전공을 열심히 공부했고 학점도 좋아서 제가 원하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큰 회사에 빨리 취업한 저를 동기들은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반전은 꿈의 직장에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퇴사를 했습니다. 광고대행사에서 하는 업무는 제가 대학 동안 공부했던 광고 공부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의 치명적인 실수는 대학 4년 동안 광고인의 멋진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대행사에서 일을 해보니 광고인은 야근도 많이 해야 했고 경쟁 PT를 위한 마라톤 아이디어 회의, 제안서 제본 등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저는 광고대행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트렌드에 둔감하며 소비도 그리 즐겨하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은 광고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죠?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2010년 당시, 정부에서 해외 인턴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정부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 현지에 있는 회사 전시주최 회사에서 4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싱가포르 보석전, 베이징 국제 관광전과 같은 업무를 경험하면서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일할 때는 좋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이력은 광고대행사 4개월, 해외 인턴 4개월. 누가 봐도 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구직자였습니다.


학교 졸업 전에는 승률이 좋았던 서류에서 번번이 미끄러졌습니다. 나쁘지 않은 스펙이었지만 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실업자로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자는 생각을 했지만 중소기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백수로 계속 살 수는 없으니 연봉 2,000만 원을 주는 중소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연봉은 때려치운 광고대행사 연봉의 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출근했습니다. 초라한 월급을 받을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고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뭐라도 힘들게 하지 않으면 화병이 날 것 같아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서 영어를 공부했고 제 관심을 끌만한 책을 읽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한 것이 어떻게든 나중에 도움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1년 6개월 정도 일했을 때 기회가 옵니다. 저의 영어 능력을 높이 산 공공기관의 부장님이 이직을 제안했습니다. 안정적인 공공기관이라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안을 받자마자 꼭 가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당히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일주일 쉬고 양재 코트라 건물에 위치한 공공기관으로 상쾌한 출근을 했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리를 안내받고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했는데 등골이 싸했습니다. 분명히 '정직원'으로 이직 제안을 하셨는데 고용계약서에는 '인턴'으로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부장님께 문의하니, 3개월간 인턴 후 무조건 정직원 전환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와... 씨... 너무 화가 나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2주일 전 와이프는 임신을 하여 휴직을 해서 저는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선배님께서 친절히 업무를 알려줬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퇴근 후에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시 출근했습니다. 출근 둘째 날, 사무실에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염곡지하차도 길을 3시간 넘게 혼자 걷다가... 와이프한테 전화했습니다.


(나) "나 이런 사정이 있는데... 그만두면 안 될까?"

(와이프) "3개월 후에 정직원 시켜준다는데... 조금만 기다리는 건 어때?"

(나) "그래, 알았어..."


다시 마음을 잡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업무를 보고 퇴근을 했습니다. 출근 3일째, 36 주면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참아보려고 했으나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와이프한테 다시 전화했습니다.


(나) "나 그만두면 안 될까?"

(와이프) "그래, 알았어. 다른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그 길로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광고대행사 4개월, 해외 인턴 4개월, 중소기업 18개월... 제가 이직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시험으로 입사가 결정되는 공공기관 채용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원한 공공기관은 영어 면접과 논술 시험이 중요했습니다. 18개월 동안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했기에 영어 면접과 논술 시험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2012년 저는 공공기관으로 이직할 수 있었고, 4,000만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 출장이 많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 3년 차가 되자 일에서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권태와 고통을 왔다가 갔다 하는 시계추라더니, 고통이 없으니 권태가 왔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해, 저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지원해서 정책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재무학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재무학을 더 공부해 보고자 파리에 위치한 ESSEC Business School로 유학을 갔습니다. 졸업 후 어디로 이직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기에 빡빡하게 수업을 들었고 성실하게 생활했습니다. 이때 데이터 사이언스에 빠져 통계와 코딩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프랑스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업무에서 인턴 기회를 얻었지만 30대 초반에 인턴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2017년 귀국을 앞둔 저에게 KDI 국제정책대학원 학교 선배가 회계법인 이직 제안을 해주셨고 운이 좋게도 다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이직으로 저의 연봉은 다시 2배 상승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공공기관과 다른 문화와 너무 힘든 업무로 힘들었지만 1년 버티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되었습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많은 동료는 회계사, 감평사 등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저도 뭐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CFA를 도전했고 3년 후 CFA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회계법인에서 3년 동안 부동산 개발 관련하여 자문을 해보니 부동산을 대출 및 투자하는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대비 부동산금융 분야에서 경력이 짧았지만 CFA 자격증, 석사 학위 등이 있어서 가고 싶었던 증권사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광고대행사, 싱가포르 현지 회사, 중소기업, 공공기관, 회계법인, 증권사 등 다양한 기관과 회사를 다녔습니다. 본인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저처럼 처음에 잘못 선택을 하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아담 그랜트의 책 Think again에서 저의 10년 동안의 경험을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으면, 찾을 때까지 계속하면 됩니다.


첫 직장이 본인이 원하는 직업이면 좋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좋은 직장은 경쟁이 치열해서 현실적으로 모두 처음에 그런 직업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4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터널 비전에 빠지지 말고 빛과 그림자를 같이 보세요.

저는 학교생활 내내 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오직 제 머릿속에만 있는 광고인이 되기 위해 5년의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다양한 가능성을 봐야 할 때 상상으로 만들어진 터널 속에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만약 대학 생활 동안 광고 현업에 있는 실무자에게 문의를 했다면, 4년 이상의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어보세요. 아는 선배가 없다고요? 그럼 링크드인에서 검색을 통해 DM을 보내보세요. 70% 이상은 적극적으로 상담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매몰비용에 빠지지 마세요.

의사결정을 할 때는 매몰비용에 빠지지 마세요. 매몰비용은 이미 투자한 것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뜻합니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5년 넘는 시간을 광고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았음에도 저는 광고대행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것을 찾았습니다.


셋째,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업무 외 시간

저는 중소기업에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다음 직업을 찾을 수 있었죠. 공공기관에서 다음 직장인 회계법인으로 이직할 수 있었던 것도 업무 외 시간을 잘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 본 업무와 크게 관련이 없었지만 저는 야간으로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했어요. 학교에서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재무학에 관심이 생겼고, 경제성 평가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재무학을 조금 더 공부해 보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휴직하고 프랑스로 유학도 가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향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빠르게 실패하기

부동산 금융을 하게 될지, 회계법인에서 일하게 될지, 증권사에서 일하게 될지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관심이 있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한테 맞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포기했고 다른 분야를 찾았습니다.


빠르게 성공하고 싶다면 빠르게 실패해 봐야 합니다. 천 개의 성공에는 천 개 그 이상의 실패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4가지 사항을 지키신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 원하는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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