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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노동자 Sep 19. 2023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기원과 역사

재무적으로는 망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프로젝트 이야기


가족과 함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보고 온 기념으로 오페라 하우스의 역사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지만 전례 없는 형태로 각종 문제가 발생하여 건축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1940년대 후반 뉴사우스웨일스 주립음악원 소장인 유진 구센스(Eugene Goossens)가 대규모 공연에 적합한 장소를 찾기 위한 로비 활동이 기원으로 평가됩니다. 1954년, 구센스는 뉴사우스웨일즈 총리 조셉 케이힐(Joseph Cahill)의 지원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1955년 9월 13일 케이힐이 시작한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 32개국의 건축가를 대표하는 233개의 출품작이 접수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덴마크 건축설계사 웃손(Jørn Utzon)의 작품으 선정되었습니다. 조개 껍질처럼 생긴 이 건물의 지붕 모양은 웃손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떠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웃손의 설계 초기 스케치

당시 부지를 차지하고 있던 포트 맥쿼리 트램 창고(Fort Macquarie Tram Depot)는 1958년에 철거되었고 1959년 3월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20년 오페라 하우스 부지

당초 4년의 건설 기간과 7백만 달러의 예산으로 시작되었지만 실제 건축 완료에 14년이 걸렸으며 예산은 1억 2백만 달러, 기존 예산보다 15배 소요되었습니다. 환상적인 건축물이지만 재정적으로 보면 완벽히 실패한 계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3단계로 건설되었습니다. 

            1 단계(1957~1963): 건축물 기초 공사 및 상부 연단 건축          

            2 단계(1963~1967): 외부 껍질(Shell) 설계          

            3 단계(1967~1973): 인테리어 및 디자인          


1단계는 1959년 3월, 엔지니어 Ove Arup&파트너스의 감독 아래 건설 회사 Civil & Civic이 시공을 담당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자금 부족과 여론 반대를 의식하여 웃손(Jørn Utzon)이 디자인을 완성하기 전에 착공(공사 시작) 했습니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공사는 47주간이나 지연되었습니다. 건축물의 기초에 대한 공사는 1963년 2월에 완료되었으나 추후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건축물의 기둥이 지붕 구조를 지탱할 수 없어 추후 재건축을 해야 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두르면 일을 그르칩니다. 

1단계 건축물 기초 공사


2단계는 오페라 하우스의 수려한 형태를 상징하는 지붕의 껍질 건축입니다. 웃손(Jørn Utzon)이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은 지붕의 껍질(Shell)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껍질(Shell)은 미리 주조된 콘크리트 뼈대에 의해 지지되는 포물선으로 초기 설계되었습니다. 오페라 하우수 건설의 가장 큰 장애물은 독특하고 복잡한 디자인으로 인한 엔지니어링 문제였습니다. 특히 독특한 곡선 모양은 구조적 난제였으며 웃손은 미적 감각을 방해하는 기둥을 피하는 데 단호했습니다.


엔지니어 Ove Arup은 설계된 형태를 현실화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콘크리트를 사용하기 위한 공사는 매우 비쌌으며 다양한 곡선 형태의 껍질(Shell)은 미리 주조된 콘크리트 뼈대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1957년부터 1963년까지 설계와 엔지니어 팀은 곡선 형태의 껍질(Shell)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1961년 중반 다양한 길이의 아치를 공통된 주형에 주조하고 같은 길이의 아치 세그먼트를 인접하게 배치하여 구형 단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접이식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아 "포스트 텐셔닝"이라는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잡아당기면 모양이 팽팽해지는 장난감과 마찬가지로 오페라 하우스의 거대한 갈비뼈 부분도 당겨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혁신적인 엔지니어링 방법은 웃손의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University of Southampton에서 오페라 하우스에 적합한 지붕을 연구하여 지붕 타일 형태와 고정 장치를 고안하여 시드니의 강한 바닷바람을 견딜 수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 지붕 타일


Ove Arup은 다양한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조정 가능한 강철 트러스 "직립 아치"를 사용하여 지붕 껍질의 건설을 감독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의 뼈때


Hornibrook Group은 2,400개의 미리 주조된 콘크리트 뼈대와 4,000개의 지붕 패널을 제조하여 건설을 진행했습니다. 지붕 타일을 개별적으로 제작하여 붙이는 대신 바닥에 시트로 조립식으로 제작하여 건설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었습니다.

2단계 껍질(Shell) 구조 건설

3단계 인테리어 공사는 건축설계사 웃손(Jørn Utzon)이 1963년 2월 사무실 전체를 시드니로 이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1965년, Robert Askin 정부가 오페라 하우스 프로젝트를 공공사업부로 이관시켰습니다. 처음 계획보다 커진 시업 비용과 기간에 대한 교육부의 비판 수위가 높아졌고 웃손(Jørn Utzon)의 디자인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비판으로 1966년에 웃손은 사임하게 됩니다. 이 때까지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간 비용은 실제 발생한 비용의 25%에 불과했습니다. 웃손은 호주 기득권층의 차별에 치를 떨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호주를 떠났습니다. 


그 후, 호주 출신 건축가 피터홀이 웃손의 설계를 상당 부분 변경하여 1973년 오페라 하우스를 완공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1,547석의 오페라 극장과 2,679석의 콘서트홀을 비롯해 여러 개의 극장, 전시관, 도서관 등이 있습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완공은 재정적으로는 실패한 프로젝트지만 건축적 야망과 엔지니어링 기술이 만들어낸 성취입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웃손의 대담한 비전은 Ove Arup의 엔지니어링 능력과 결합되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현대 건축 작품 중 하나를 탄생시켰습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인간의 창의성과 협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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