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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Jan 06. 2024

그놈의 살. 살. 살.

몇 년 전, 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난 130kg의 초고도비만에서 60kg의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었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뺀 건강한 살 빼기는 나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방송 후, 반응은 내 마음과 달랐다.     

 “살 뺀 거 맞아요? 아직 뚱뚱한데.”     

 작정하고 상처 주는 채찍질 형 댓글과     


“10kg만 더 빼시면 예쁠 거 같아요.”,

“긁지 않은 복권이에요! 더 힘내세요”     

같은 응원인 듯 응원 아닌

조건형 칭찬 댓글이었다.     

 '~kg만 더 빼면', '긁지 않은 복권’     


 내 다이어트 목표가 언제부터 미인 되기였지?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살이 쪘던 소아비만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40kg이 되고,

학창 시절은 두 자리에서 세 자리의 체중으로,     

20대는 가뿐하게 130kg으로 초고도비만의 자리에 올랐다.     


130kg의 20대 여자.     


내가 등장하면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다.     

잔소리, 걱정, 다이어트 비법, 응원까지…

주변은 끊임없이 날 걱정하고, 의식했다.     

시끄러운 주변 덕분인지 나는 60kg을 감량했다.


처음 살을 빼니 세상이 재밌었다.     

날 한심하게 바라보던 시선이 사라지고,

나를 "대단한 사람" , "의지의 한국인", "모든 해낼 사람"이라며 칭찬했다.     

게다가 살이 쪘을 때 하지 못했던 일도 이제 할 수 있었다.     


첫 백화점 옷 쇼핑, 첫 셀카.     

그리고 첫 연애도 시작했다. 까르르.     




그런데 행복은 잠깐이었다.     

"조금만 더 빼."라는 주변의 참견도 많아지고, 내 욕심도 과해졌다.               

매일 아침, 저녁 체중계 앞에서 나는 단두대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살이 빠지면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이고, 다시 살이 찌면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다이어트용 시술에 끌려서 성형외과를 다니고, 예민한 날은 스트레스성 폭식이 이어졌다.     

온종일 다이어트 생각만 하는데 살은 갈수록 쪘다.     

처음에 1, 2kg이 찌던 살은 몇 달 사이에 10kg이 쪘다.     

어느새 쪘다 빼는 요요가 반복되고, 부작용도 함께 왔다.     


나의 20대를 오직 살, 그놈의 살을 빼겠다며 시간을 보냈다.     

그놈의 살 때문에 인생 참 많이 소비했다.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안 겪어본 부작용이 없다.     




이제 30대가 되고 n 년이 흘렀다.     

나는 다시 80kg이 되었다.     


다이어트는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돌고, 나는 다이어트가 여전히 못마땅하다.     

그래도 예전보다 꽤 편해졌다.     

자주 보기 싫지만, 가끔 안부가 궁금한 회사 선배 같다고 할까?    

      

그래서 써야겠다. 글을.     

내가 겪은 다이어트 욕 좀 시원하게 할까, 한다.     


뭐, 살 못 뺀 게 자랑이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살찐 게 죄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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