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타일 Jan 21. 2024

엄마, 귀는 잘못이 없잖아.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40kg이 넘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뚱뚱한 초등학생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면 순수하게 놀리기 좋아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급식 시간이면 아이들은 내 식판에 음식이 얼마나 담기나 살펴보고

놀려댔다. 물을 뜨러 간 사이, 내 식판을 치워버린 날도 있었다.

차라리 원망할 사람이 한 명이면, 욕이라도 퍼부을 텐데.

이름,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다수의 놀림이었다.

분명 내가 받은 상처는 선명한데 

가해자가 떠오르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나는 학교에서 애들에게 시달리고, 부모님은 동네 어른들에게 시달렸다.

잘 나가던 엄마의 미용실은 늘 동네 어른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손님들은 엄마에게 나에 대해 한 마디씩 말했다.

"아니, 원장님.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딸을 저렇게 두면 어쩌려고 그래~ 

관리를 해줘야지."

평소, 바쁜 엄마는 가족을 챙기지 못한다며 미안해했다.

그런데 내가 살이 찐 뒤로 자신이 엄마 노릇 못해서 내가 이 지경이 되었다며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다.


엄마는 미용실에서 다이어트에 좋다 하는 정보를 알음알음 모았다.

돼지감자 가루부터 양파 우린 물, 계피차까지….

초등학생인 나는 쓴맛만 나는 물을 안 마시겠다며 도망을 다녔고, 

엄마는 나를 어르고 달래서 한 잔이라도 더 마시게 했다.

엄마는 한동안 열심히 돼지감자, 양파를 우려서 내게 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퉁퉁한 초딩이었다.




포기를 모르는 엄마는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에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벌써 30년쯤 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눈이 매서운 사마귀를 닮은 한의사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옆으로 앉히고 장미 가시보다 

작은 침이 달린 스티커를 귀에 붙이기 시작했다.

아파서 울 정도는 아니지만 짜증이 

날듯한 따끔거림이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양쪽 귀에 쉬지 않고 침 스티커를 붙이며 말했다.

"배가 고플 때마다 스티커를 누르렴. 그러면 배가 고파지지 않을 거다."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은 내 귀를 열심히도 눌렀다.

퇴근한 아빠도 한 번 누르고,

오빠는 내게 장난치려고 누르고,

엄마는 내가 눈에 띄면 눌렀다.

온종일 가족들은 내 귀만 보며 내 식욕이 사라지길 바랐으나….


식욕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슬슬 화가 나고 서러웠다.

이제 엄마 손이 얼굴 가까이만 와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물이 왈칵 흘렀다.

나는 애원했다.

"엄마, 밥을 먹은 건 입인데, 왜 귀를 혼내? 귀는 잘못이 없잖아."

"..."


일주일쯤 지났을까, 

엄마는 귀 침을 모두 제거했다.

내가 엄마를 보면 도망가는 모습에 학대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귀 침을 뺀 뒤, 아빠와 라면을 먹으며 생글생글 웃는 내 모습을 보고, 

쟤는 살 빼기 글렀다고 엄마는 생각하셨단다.



이전 02화 태몽부터 글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