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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Jan 14. 2024

태몽부터 글렀다.


얼마 전, 나의 오랜 친구 Y가 어렵게 임신했다.

2년 가까이 시험관 시술을 하던 그녀가 드디어 임신했다는 소식에 나도 무척 기뻤다.

Y를 만났다.

그녀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며칠 전 꾼 태몽 이야기를 했다.

"내가 복숭아나무를 보는데 유독 진한 분홍색에 큰 복숭아가 있더라.

너무 예뻐서 땄는데 그게 우리 용용이 태몽이야."

"오 용용이는 예쁜 딸인가 보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딸을 상징한다는 예쁜 과일.

혹은 보석, 꽃, 나비 등 듣기만 해도 태몽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Y는 자신의 태몽은 자두였는데 용용이는 복숭아라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리고 Y가 내게 물었다.

"넌 태몽이 뭐였어?"

"나? 쌀밥. 흰쌀밥"

"쌀밥…?"

“응. 내가 좋아하는 밥.”

Y는 손뼉을 치며 태몽과 내가 잘 어울린다고 했다.

"수타일아, 비웃는 게 아니라 너랑 태몽이 너무 잘 어울려! 네가 밥을 좀 좋아하니?!"


맞다. 나랑 친한 지인이라면 모두 알 만큼 나는 밥을 좋아한다.

여행 갈 때, 즉석밥 꼭 챙기는 사람? 저요!

고기 먹을 때, 공깃밥 꼭 먹는 사람? 저요!!

나는 밖에서 파스타나 샌드위치를 먹어도 집에 오면 냉장고를 뒤져 반찬과 밥을 먹어야

식사를 한 것 같다.

게다가 갓 지은 밥은 화려한 반찬이 필요 없다.

김치나 조미김만 있어도 밥 두 공기는 뚝딱 해치운다.

또 고소한 참기름과 깨, 간장을 넣고 밥을 비벼서 마른 김에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종종 본가에서 밥을 먹으면 엄마는 남다른 내 태몽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시냇물에 텅 빈 가마솥을 던졌는데 갑자기 솥에 빛이 나면서 연기가 나는 거야.

그러더니 가마솥에 흰쌀밥이 가득 생겼어.

그게 네 태몽이야.

어른들이 네 태몽 듣더니 먹을 복 갖고 태어났다고 좋아하셨어."

"엄마 먹을 복이 너무 넘친 거 같은데…?"


엄마는 웃으며 계속 말했다.

"너는 엄마 뱃속부터 흰밥 좋아하더니 태어나서 밥만 줘도 꿀떡꿀떡 잘 먹었어.

김치 하나만 줘도 밥솥에 고개를 푹 묻고 먹더라니까."

"... 엄마 그때 좀 말렸어야지."

그래. 나도 기억난다. 냉장고 속 김치통을 꺼내와 옆에 두고, 밥솥째 끌어안고 먹던 어릴 적 모습.


다이어트 해본 사람은 안다.

탄수화물이 가득한 밥을 좋아하면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든지.

엄마는 평생 어디 가도 굶어 죽을 일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 태몽이 살찌기 좋은 태몽이라며 트집을 잡았다.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얼씨구, 네 태몽이 꽃, 보석 이런 거였으면 네가 말랐을 거 같아?"


흠….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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