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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Feb 01. 2024

집사는 집사 하느라 집을 못 사

비상이야. 통장 잔액을 보지 말아야 했는데….

통장 잔액이 언제 이렇게 줄었지?

네 병원비 자릿수는 늘었는데 내 통장의 자릿수는 줄었어.

주변에 얘기해 봤자 돈 벌어서 개한테 다 쓰냐고 비난할 게 뻔해.

그러니까 오늘은 네게 넋두리 좀 할게.

데려와 놓고 치사하게 돈 얘기 꺼내서 미안한데 너는 내 돈의 가장 큰 지출을 담당하고 있어.

특히 병. 원. 비.


처음 너를 데려오고 몇 달 뒤, 나는 네 건강검진을 했어.

너의 전 주인은 역시 내 기대에 걸맞게 네 건강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나 봐

너는 이미 심장병과 호르몬 질병을 앓고 있고, 피부병도 심했어.

수의사는 네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어.

한 달 치 심장약과 쿠싱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오는 데 마음이 무거웠어.

'매달 치료비가 이렇게 많이 나오나? 다음 달에 혈액검사랑 심장초음파까지 하면

얼마나 나올까?'

한숨 쉬는 나와 달리 너는 나를 보곤 그런 거 다 상관없다는 듯 해맑게 짖어.

나는 사료 한 컵에 심장약과 쿠싱 약 캡슐 3개를 넣어서 네 앞에 줘.

너는 마치 처음 먹는 밥처럼 사료와 함께 캡슐 약도 꿀떡 맛있게 먹어.

고마워, 사료만 줘도 잘 먹어줘서…



그리고 한 달 뒤, 수의사는 네 나이가 많으니, 심장에 좋은 영양제도 같이 먹으면

좋다고 권했어. 

'이번 달은 미끄럼 방지 매트 사야 하는데. 개모차도 사야 하고….'

약값 20만 원, 심장 영양제 6만 6천 원, 매트는 109,000원, 개모차 20만 원….

분명 지난주에 월급을 받았는데 결제 문자 몇 번에 통장이 가벼워졌어.


열심히 네 물건을 고르는 나를 보고 한 지인이 자신도 개를 키우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무작정 반대했어.

"지금 예쁘다고 결정하지 말고, 

10년쯤 지나서 네 개가 늙고 아프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그리고 너는 네 개를 위해 얼마까지 돈을 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네 병원비 영수증을 보여줬어.

그 후, 지인은 개 키우기를 포기하고, 너를 "억돌이"라고 불렀어.

사는 동안 억은 쓰고 갈 거 같다면서…. 크크

그래. 사실 나도 너에게 이렇게 큰돈이 필요할지 몰랐어.




전에 어디에서 "집사는 집사 하느라 집을 못 사"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내가 지금 그 상황이야.

나도 너 때문에 집 못 살 거 같아. (사실 그만큼 돈은 없다고 한다.)


사실 나는 매달 19일 밤이 되면 잠을 설쳐.

내일 네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까, 다른 검사가 더 필요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지는 19일 밤이야.

내일 병원에서 네게 새로운 이벤트가 없어야 할 텐데….

약이 더 추가되어서 비싸지면 안 되는데….


휴. 나는 여전히 돈이 없는 내가 힘들어.

네 건강을 두고 돈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

그래서 네게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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