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심심한 오후가 되면 나는 냉장고를 뒤적거려.
'고구마, 단호박, 딸기, 사과….'
오늘은 에어프라이어를 꺼냈어.
얼마 전 친구가 보내 준 강화 고구마가 있거든.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70도 30분.
20분쯤 지났을까.
거실에 달큼한 고구마 냄새가 진동하면 너는 큰 소리로 짖기 시작해.
고구마… 네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잖아.
이젠 눈도 거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면서 고구마 냄새는 어떻게 잘 맡는지…
아직도 네 코는 청춘인가 봐.
고소한 생선 튀기는 냄새도, 진한 고기 굽는 육향도 반응 없는 네가 고구마 굽는 냄새는
기가 막히게 알고 큰소리로 짖어.
"왕!!! 으르르! 왕!!'
미남이 너 아침 먹었잖아...
그래도 구운 고구마는 못 참겠어?
고구마 내놓으라고 네가 짖으면 나는 애가 타.
에어프라이어 앞에서 고구마가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계속 찔러보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고구마가 다 구워졌어.
갓 구워진 고구마는 뿌연 김이 나고, 지금 손을 대면 분명 델 것처럼 뜨거워 보여.
그래도 나는 손을 대고, 빨리 껍질을 까야해.
아까부터 침 흘리며 기다리는 네가 한계가 왔는지 고래고래 큰 소리로 짖고 있거든.
뜨거움을 참고 고구마 한쪽 껍질을 벗기고, 손을 바꿔서 남은 껍질을 벗겼어.
입으로는 고구마를 불어 식히지만 갓 구운 고구마가 식겠니...
뜨거운 손을 어쩔 줄 몰라서 위아래로 흔들고, 고구마는 계속 후후 불어.
오두방정 떨며 고구마 까는 내 모습이 마치 춤추는 원숭이 같아
힘들게 깐 고구마 한쪽을 네게 주면 너는 홀랑 한입에 털어 넣고 더 달라고 짖었어.
야... 좀 씹어.. 내가 어떻게 깐 고구마인데...
그리고 네 배가 부를 때까지 계속 우리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
나는 춤추는 원숭이 같고 너는 홀랑 한입에 털어 넣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간식은 또 있지
겨울부터 봄까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나와.
바로 딸기.
아니, 사과나 바나나처럼 구하기 쉬운 과일을 좋아했으면 좋을 텐데.
너는 특이하게 딸기를 좋아해.
오죽하면 널 딸기 왕자라 부르겠어.
딸기에서 가장 빨갛게 잘 익은 끝부분만 잘라서 주면 넌 그릇에 코를 박고 먹었어
입 주변 털은 딸기 때문에 빨갛게 물들었어.
털에 묻을 딸기즙을 핥느라 연신 혀를 날름거리는 네가 너무 귀여워
네게 주고 남은 딸기의 하얀 꽁다리는 내 몫.
네가 딸기를 좋아한 덕분에 나도 이제 딸기를 좋아해.
나는 원래 귤처럼 새콤한 과일을 좋아해서 딸기는 밍밍한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젠 달달하고 말랑한 딸기가 더 좋더라고.
잘 물러서 오래 두기 어렵고 가격도 꽤 비싼 딸기.
사실 난 마트에서 여러 딸기를 보고 고민했었어.
단단하고 색이 예쁜 싱싱한 딸기 500g에 12,900원…. 조금 무른 딸기 9,900원….
한 번은 세일 코너에 있던 딸기를 먹고 아팠는지, 전날 산책이 추웠는지
네가 딸기를 먹고 토했어
그 후에 나는 너에게 주는 딸기는 세일 코너에서 사지 않아.
비싸도 갓 나온 신선한 딸기만 살 거야.
(대신 마트 앞 나의 붕어빵 값을 포기했어)
나는 너로 인해 계절마다 나는 재료가 소중해졌어.
따뜻한 봄이 오면 달콤한 향이 나는 딸기를,
여름은 시원한 수박과 함께,
날씨가 쌀쌀해지면 김이 나는 고구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