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너는 벌써 배가 고프다고 짖고, 그 옆에 네 짖음에 관심 없는 듯 기지개를
켜는 오렌지색 털 뭉치가 있어.
그래, 너랑 한 살 차이 나는 네 동생 미로야.
진한 오렌지색 털에, 다른 포메라니안에 비해 덩치가 큰 미로는 내 첫 강아지였어.
16년 전, 내가 부모님과 살 때,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분양받기로 했어.
미로는 지방에 있는 어느 질이 나쁜 분양샵에서 태어났어.
직접 데려다준다던 분양샵 사장은 갑자기 말을 바꿔 3개월도 안 된 미로를 고속버스
짐칸 상자에 실어 보냈단다.
지금은 경악할 일이지만 그때 난 개에 대해 아주 무지했어.
상자 속 미로는 사진과 다른 아이였어.
포메라니안이라고 하기엔 다리가 길고, 털도 별로 없었단다.
사람들은 사기를 당했다며 미로를 포메라니안 잡종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미로 종류와 상관없이 미로를 사랑했어.
미로는 가족 중 아빠를 제일 좋아했어.
일찍 일어나는 아빠가 주로 미로 산책을 시키셨거든.
몇 년 뒤, 내가 독립할 때도 미로는 부모님 댁에서 계속 살기로 했어.
늘 나보다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녔는걸….
내가 독립한 뒤, 평소 연락을 잘 안 하는 아빠가 먼저 연락하는 건 대부분 미로 때문이었어.
"딸, 미로 예방접종 문자 왔는데? 주말에 병원 데려가야지." , "미로 간식이 다 떨어졌다. 주문해줘" 등등.
그런데 3년 전부터 부모님의 전화가 부쩍 늘었어.
"미로가 기침을 계속해서 병원 왔어. 의사 선생님이랑 네가 통화 좀 해봐."
"오늘 미로가 설사했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너도 올래?"
수의사는 미로가 이제 나이가 있으니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러네, 미로가 벌써 13살이지.
아빠는 미로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하셨어.
수의사에게 들은 안약 넣는 법부터 약 먹이는 방법까지 종이에 적어두셨어.
그리고 미로가 매일 먹는 약을 혹시 까먹을까 봐 약 봉투마다 날짜까지 적으셨어.
우스갯소리로 본인 혈압약은 까먹어도 미로 약은 안 까먹는다고 하셨거든.
그런데 미로 건강이 더 나빠진 뒤, 부모님은 내게 미로를 부탁하셨어.
시간차 두고 넣는 안약부터,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까지 미로 관리가 더 까다로워졌거든.
70세의 부모님이 사람 나이로 70이 넘은 미로를 관리하는 건 더 이상 무리였어.
그렇게 미로는 우리 집에 왔어.
너와 미로가 처음 만난 날, 워낙 순한 미로는 네게 짖지도, 다가가지도 않았어.
그런데 너는 어휴…. 어휴…. 미로가 마치 침략자라도 되는 것처럼, 눈이 두 배는 커져서
짖고, 침을 흘리고, 오줌 지리고…. 난리 개난리.
야, 사실 말이나 바로 하면 너보다 미로가 나랑 훠어얼~~~씬 오래 살았거든?
미로는 16년 같이 산 박힌 돌이고, 너는 내가 즉흥적으로 주워 온 굴러온 돌이야.
그런데 왜 네가 텃세를 부려….
너는 한동안 난리를 피웠지만, 미로는 네게 별다른 반응을 안 했어.
덕분에 너도 미로가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더는 짖지 않았어.
너희는 딱히 친하지도, 딱히 싸우지도 않고, 서로를 돌보듯 대해서 우리 집은 평화로워졌어.
작은 문제라면 모시는 분이 늘어나서 나만 더 바빠졌다는 점?
네 약, 미로 약 따로 표시해야 하고, 밥도 다른 종류 캔 준비.
게다가 이제 산책은 더 바빠졌어.
한 손은 네가 앉은 개모차를 밀고, 한 손은 미로 리드줄을 조절해야 하거든.
휴, 하루가 정신없으면서 평화로워.
오늘도 정신없는 산책 후, 너희에게 간식을 줘.
그리고 너희가 간식 먹는 동안, 나도 잠깐 쉴 수 있어.
10분이나 지났을까,
간식을 다 먹은 네가 짖기 시작해.
마치 미로 간식을 뺏어달라는 것처럼 미로를 보고 계속 짖어.
미로는 시끄러운지 간식을 물고 달아나고, 그럼 넌 억울하다는 듯 더 크게 짖어.
어이, 나랑 더 오래 산 건 미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