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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Feb 08. 2024

계절의 간식



입이 심심한 오후가 되면 나는 냉장고를 뒤적거려.

'고구마, 단호박, 딸기, 사과….' 

오늘은 에어프라이어를 꺼냈어.

얼마 전 친구가 보내 준 강화 고구마가 있거든.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70도 30분.

20분쯤 지났을까.

거실에 달큼한 고구마 냄새가 진동하면 너는 큰 소리로 짖기 시작해.


고구마… 네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잖아.

이젠 눈도 거의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면서 고구마 냄새는 어떻게 잘 맡는지…

아직도 네 코는 청춘인가 봐.

고소한 생선 튀기는 냄새도,  진한 고기 굽는 육향도 반응 없는 네가 고구마 굽는 냄새는

기가 막히게 알고 큰소리로 짖어.

"왕!!! 으르르! 왕!!'

미남이 너 아침 먹었잖아...

그래도 구운 고구마는 못 참겠어?


고구마 내놓으라고 네가 짖으면 나는 애가 타.

에어프라이어 앞에서 고구마가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계속 찔러보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고구마가 다 구워졌어.

갓 구워진 고구마는 뿌연 김이 나고, 지금 손을 대면 분명 델 것처럼 뜨거워 보여.

그래도 나는 손을 대고, 빨리 껍질을 까야해. 

아까부터 침 흘리며 기다리는 네가 한계가 왔는지 고래고래 큰 소리로 짖고 있거든.

뜨거움을 참고 고구마 한쪽 껍질을 벗기고, 손을 바꿔서 남은 껍질을 벗겼어.

입으로는 고구마를 불어 식히지만 갓 구운 고구마가 식겠니...

뜨거운 손을 어쩔 줄 몰라서 위아래로 흔들고, 고구마는 계속 후후 불어.

오두방정 떨며 고구마 까는 내 모습이 마치 춤추는 원숭이 같아

힘들게 깐 고구마 한쪽을 네게 주면 너는 홀랑 한입에 털어 넣고 더 달라고 짖었어.

야... 좀 씹어.. 내가 어떻게 깐 고구마인데...

그리고 네 배가 부를 때까지 계속 우리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

나는 춤추는 원숭이 같고 너는 홀랑 한입에 털어 넣고.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간식은 또 있지

겨울부터 봄까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나와.

바로 딸기.

아니, 사과나 바나나처럼 구하기 쉬운 과일을 좋아했으면 좋을 텐데.

너는 특이하게 딸기를 좋아해.

오죽하면 널 딸기 왕자라 부르겠어.

딸기에서 가장 빨갛게 잘 익은 끝부분만 잘라서 주면 넌 그릇에 코를 박고 먹었어

입 주변 털은 딸기 때문에 빨갛게 물들었어.

털에 묻을 딸기즙을 핥느라 연신 혀를 날름거리는 네가 너무 귀여워

네게 주고 남은 딸기의 하얀 꽁다리는 내 몫.


네가 딸기를 좋아한 덕분에 나도 이제 딸기를 좋아해.

나는 원래 귤처럼 새콤한 과일을 좋아해서 딸기는 밍밍한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젠 달달하고 말랑한 딸기가 더 좋더라고.

잘 물러서 오래 두기 어렵고 가격도 꽤 비싼 딸기.

사실 난 마트에서 여러 딸기를 보고 고민했었어.

단단하고 색이 예쁜 싱싱한 딸기 500g에 12,900원…. 조금 무른 딸기 9,900원….

한 번은 세일 코너에 있던 딸기를 먹고 아팠는지, 전날 산책이 추웠는지

네가 딸기를 먹고 토했어


그 후에 나는 너에게 주는 딸기는 세일 코너에서 사지 않아.

비싸도 갓 나온 신선한 딸기만 살 거야.

(대신 마트 앞 나의 붕어빵 값을 포기했어)


나는 너로 인해 계절마다 나는 재료가 소중해졌어.

따뜻한 봄이 오면 달콤한 향이 나는 딸기를,

여름은 시원한 수박과 함께,

날씨가 쌀쌀해지면 김이 나는 고구마를.

나는 이제 사계절을 네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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