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가 수액 맞는 동안 "길상사"라는 절에 다녀왔어.
신을 믿지 않던 M씨는 네가 아픈 뒤로 종종 절에 간단다.
나도 M씨를 따라 절에 가곤 해.
길상사는 꽤 높은 산 중간에 있어.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뒤, 도착한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어.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산 밑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절까지 걸어가기로 했어.
차로 갈 때 10분이면 도착해서 우습게 봤는데 웬일이야….
나랑 M씨는 두 걸음마다 헉헉대었어.
자꾸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때가 떠오르더라.
작년 10월, 가을인데 아직 더웠던 날.
우리 셋이 갔던 강화도, 기억나니?
네가 간암 판정받고 얼마 안 되었을 때야.
수능을 한 달 앞두고, 부모님들이 기도 하려고 절을 많이 간다는 뉴스를 봤어.
그리고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가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이야기도 나왔단다.
나랑 M씨는 너를 데리고 강화도 보문사로 향했어.
2시간쯤 달려 보문사 도착.
너를 개모차에 태워 절로 향하는데 도착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이 보였어.
이거 무슨 일이야? 절이 산 안에 있어??
무작정 온 우리는 높은 언덕 앞에서 고민했어.
일하는 분께 여쭤보니 걸어서 10분이면 절에 도착한다고 하셨어.
처음 널 안고 오른 건 나였어.
2분도 안 돼서 죽겠더라. 무거운 내 몸에 5kg의 네가 추가되니 별생각이 다 나더라.
'평소에 등산 좀 할걸…. 살 좀 뺄걸... 미남이도 살쪘나….'
내가 헉헉대며 걷는 동안 너는 뚱한 표정으로
아주 느리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구경했어.
내게 너무 길던 10분의 오르막길이 끝나고 절에 도착했어.
우리는 대웅전에 가서 소원을 빌었어.
M씨와 나는 서로 묻지 않았지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알고 있어.
둘 다 눈이 새빨개져서 나왔거든.
'제발 우리 미남이 안 아프게 해주세요. 제발 데려가지 마세요.'
너를 안고 절을 둘러보는데,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어.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갔지.
사람들은 까마득해 보이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어.
계단 앞 표식에 크게 글이 쓰여있었어.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
세상에… 나는 M씨에게 말했어.
"M아, 여기는 무리야. 이제 내려가자."
그때 M 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어.
"소원 이뤄준다잖아. 다녀와야지."
이미 마음먹은 M씨를 말릴 수가 없었단다.
그래, 두 명이 같은 소원 부탁드리는데 들어주시겠지.
우리는 개모차를 절 사무실에 맡기고 널 포대기에 넣어 안았어.
그리고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어.
계단은 야속하게도 끝날 것처럼 보이다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계단이 나타났단다.
우리는 돌아가며 너를 안고 계속 계단을 올랐어.
M씨는 스스로 최면을 거는 것 같았어.
"헉…. 헉. 미남이…. 헉…. 여기 가야 해…. 소원 이뤄준다잖아.
미남아…. 후…. 만수무강 빌어…. 헉."
10월이지만, 날씨는 무척 더웠고, 저질 체력인 우리는 땀범벅이 돼서 비틀거렸어.
우리와 달리 너는 평소처럼 뚱한 표정으로 우리 품에서 하품하거나 고개를 돌려 산을 구경했어.
결국 우리는 소원을 이뤄준다는 길을 끝까지 올랐단다.
M씨는 땀인지 눈물인지 얼굴이 다 젖어서는 널 보며 웃었어.
10월의 날씨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더웠던 그날,
너를 위해 이 악물고 오르는 M 씨를 보니까
신이 있다면 M 씨와 너를 좀 더 함께하도록 두시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 오늘은 네가 없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저질 체력으로 언덕을 오르고,
여전히 서로 같은 소원을 빌었단다.
아마 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때는 절에 오지 않으려나?
음…. 아냐,
나는 그때도 여전히 저질 체력으로 언덕을 오르고,
여전히 널 위한 소원을 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