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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타일 Apr 18. 2024

미로의 생일.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미로의 생일 축하합니다!!

미로야, 벌써 17번째 너의 생일이야.

네가 17살이 되었다는 건 우리가 함께 한 지 17년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해.

  

왜냐하면 너는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우리 집에 왔으니까.     

그때는 오렌지색에 아주 작은 솜뭉치였는데

이제는 오렌지색보다 하얀색이 많은 솜뭉치가 되었네.

그래도 괜찮아. 너는 나이가 들어도 아주 예쁜 개니까.


미로야, 미안해.     

언제나 너보다 미남이를 챙겨서….     

3년 전, 부모님 댁에서 널 데려올 때, 너를 잘 돌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미남이가 갑자기 큰 병에 걸렸어.     

걷지도 못하는데, 눈도 안 보이고, 간암까지 걸려서 미남이를 제일 먼저 챙길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네게 많은 걸 빼앗았단다.     

내 옆에 놓여있던 네 방석 대신 놓인 미남이 방석,     

네 밥은 늘 미남이가 밥을 먹은 다음 차례.     

차 안에서도 내 품에는 미남이를, 너는 뒷좌석 카시트.          

심지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조차 미남이에게 맞춰져 있어.     

평소 얌전한 네가 산책줄만 보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꼬리를 흔들어.     

빨리 가자며 총총걸음을 걷는 너를 못 본 체하고, 나는 미남이 준비에 바쁘단다.     

'미남이 대소변 봤고, 비상약 넣었고, 개모차는 차에 실었고….'     

나는 한 손에 큰 가방을, 한 손은 미남이를 안았어.     

나의 긴 준비 기다리다 지친 너는 내 발밑에 앉아 계속 꼬리를 흔들고 있어.     

마치 자기도 잊지 말라는 것처럼.  

        

드디어 산책 시작!

분명 어제도 왔던 길인데 너는 마치 새로운 길처럼 열심히 냄새를 맡고 달리려고 해     

그런데 미남이가 탄 개모차를 끌며 네 줄을 조절하는 게 나로서 쉽지 않아.     

개모차에 탄 미남이는 작은 언덕에도 자꾸 휘청이고, 너는 자꾸 빨리 뛰려고 하고.     

결국 미남이는 흔들리는 개모차가 불편하다며 금세 안아달라고 짖기 시작해.     

그럼 나는 신이 난 네게 다가가 또 사과한단다.     

"미로야 미남이 힘든가 봐. 집에 가자, 미안해"     

신나서 흔들던 네 꼬리가 축 처지고, 나를 따라오는데 나도 정말 속상하고, 미안해.  


        


네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며 보낸 시간이 벌써 3년이야.     

3년 동안 너도 많이 달라졌어.     

계단을 두 개씩 점프하던 네가 이젠 낮은 턱에도 뒷다리가 걸려 떨어지고,     

인형처럼 까맣던 눈동자는 회색으로 변해서 점점 시력이 사라지고 있어.     

사실 너도 벌써 17살,

미남이보다 고작 4개월 늦게 태어난 너도 남은 견생이 길지 않을 텐데….     

나는 여전히 네가 미남이보다 건강하다는 이유로 네게 자주 미안한 일을

저지른단다.               


미로야, 나는 네가 느리게 늙었으면 좋겠어.     

아직 너만 예뻐하고, 네가 최우선이었던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조금 천천히, 너만 예뻐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천천히 나이 들면 안 될까?     


미로야,

오늘은 단둘이 산책하러 갈까?     

오늘은 산책 내내 너만 바라볼게.     

그리고 아주 오래 놀다 와도 좋아.     


미로야, 너의 17번째 생일 정말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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