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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유 JOYU Oct 03. 2022

엄마가 내 비행기에 승객으로 탔다.

- 모두가 승무원을 보고 있을 때, 엄마는 딸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해외에서 스테이하는 호텔 중에 내가 좋아하는 몇몇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영국의 맨체스터이다. 오래된 고성같은 건축물에 높은 천장을 아우르는 호텔은 들어가면서부터 웅장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호그와트를 연상시키는 이 호텔에 들어설 때면 귀에서 저절로 해리포터 OST가 들린다. 처음 우연히 오게 된 뒤로, 호텔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크루들이 기피하는 이 노선을 혼자 꿋꿋하게 비딩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 크루들은 맨체스터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 "Jin and Tonic"으로 대체한다. 혹은 "Cup of Tea please". 이 단어들로 승무원들이 기피하는 이유를 대신하고 싶다. 8시간동안 발바닥이 불이 나게 뛰어다녀야 겨우 랜딩할 수 있는 이 악명 높은 비행. 하지만 희한하게도 내 비행 때 승객들은 비교적 젠틀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홀로 계속 신청하는 배짱을 부릴 수 있었나보다.



이 당시 맨체스터 비행 전에 휴가가 있어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파리 여행을 떠났다. 그 뒤로 나는 비행기를 오퍼레이팅 하기 위해 파리에서 아부다비로 오고, 동생과 엄마는 파리에서 맨체스터로 넘어 오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서 놀다가 처음으로 내가 오퍼레이팅하는 비행기에 엄마와 동생을 태우고 아부다비로 오는 야심찬 일정이었다.



이때 조금 속상한 일이 생겼다. 영국이 이미그레이션이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 동생과 엄마가 심사에서 난항을 겪었다. 맨체스터에서 "왜 비행기 티켓이 맨체스터를 입국하는 것만 있고 출국하는 거는 없냐"라고 문제를 삼았던 것이다.


이 당시에 난민문제가 굉장히 이슈가 될때 였고 입국 티켓만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물어볼만한 상황이었다. 낯선 외국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물어대니까 둘다 당황했지만 동생이 침착하게  "언니가 캐빈크루라서 우리는 맨체스터에서 만나서 같이 아부다비로 들어 갈 계획"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바로 수긍하고 보내줬다고 했다. (지금도 우리 집 유행어가 된 “마이 시스터 캐빈 크루”)



해피엔딩이었지만 낯선 땅에서 엄마랑 동생이 놀랬을 생각하니 괜스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면 모든 것을 잊는 법. 밤샘에 비행에 녹초가 되었지만 나는 샤워만 한채 후다닥 동생과 엄마를 데리고 시내로 나섰다. 맨체스터에는 둘다 처음이라 관광객 모드였고, 엄마는 파리보다 훨씬 더 안전한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영국 대표 브래드인 키스 캐드슨 가서 기념품으로 여행가방이랑 이모저모를 쇼핑했다. 심지어 세일 중이서 엄청 담다가 파산할 뻔 했지만 엄마랑 동생이 지금도 그 가방을 잘가지고 다니고 다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두손 가득 쇼핑을 마치고 애프터눈 티세트를 먹으려고 했는데 다들 긴 여행에 지쳐서 간단히 음식을 사서 호텔에 들어가서 먹기로 했다.



호텔 앞에 한인마트가 있어서 거기서 한국음식도 사고 FIVE GUYS에서 햄버거도 사서 푸짐하게 먹었던 저녁. 음식이 대수인가요, 우리가 함께라면 이미 어떤 음식이어도 진수성찬인걸요? 우리 삼모녀가 다시 합체를 해서 맘편히 즐겁게 수다떨면서 맛있게 먹었다. 거기에 호텔에 욕조도 있어서 반식욕도 하면서 밀린 파리의 피로를 풀었다. 대부분 혼자 보내는 호텔에 이렇게 가족끼리 왁자지껄하게 보내니까 온기있고 힐링되는 레이오버였다.



다음날 아침에 엄마와 동생에게 영국에 왔는데 Real English Breakfast를 먹어봐야지 않겠냐며 둘을 데리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호텔 특유의 고풍적인 분위기에서 따뜻하게 아침을 먹으니까 엄마랑 동생 둘다 너무 만족해 했다. 엄마는 지금도 이 때 아침이 좋았다면서 종종 말씀하시고는 하는데 특별한 음식이라기 보다는 통유리 천장에 따뜻하고 여유있었던 아침이 좋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동생은 맨체스터 공항으로 가기 위해 떠나고 나는 얼른 준비를 마치고 픽업을 내려갔다.  이번 맨체스터의 가장 큰 목적인 내 비행기에 엄마와 동생을 태우는 일정에 심장이 쿵쾅댔다.  승무원을 하다보면 가족을 태우고 비행을 하기가 은근 어려운 데, 이런 기회가 와서 소풍 가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섰다.


보딩 때 내가 엄마와 동생을 맞이하는 것도 좋았는데, 기장님이 직접 칵핏에서 나와서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해주셨다. 모자까지 쓰고 나오셔서 벗으면서 우리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는 데 뭉클했다. 엄마보고 "딸이 일을 잘하고 있으니 자랑스러워 하시기를 바란다. 오늘 편안한 비행되시기를 바란다"라며 따스하게 인사를 건네던 기장님, 지금도 잊지 못한다.


더불어 사무장님부터 모든 크루들이 비행 내내 살뜰히 챙겨줘서 내 어깨가 괜히 더 으쓱해졌다. 후일담이지만, 정장 둘은 집중되는 이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했다. 그도 그럴만한게 기장님부터 차례대로 찾아와 인사를 하니 다른 승객들이 도대체 저사람들은 뭘까 하고 당연히 시선이 몰릴 수 밖에.




밤샘 비행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비행을 하고 다시 우리 아부다비 집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나는 엄마에게 신나서 이야기 하려는데 엄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자 대뜸 내 트롤리랑 러기지를 잡아당겼다. 그러더니 "가서 자 얼른.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가서 씻고 빨리 누워."라며 등을 화장실로 떠밀었다. 어버버 하면서 욕실로 들어갔는데,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나는 엄마 한테 '딸이 이렇게 일을 열심히하며 잘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본 것은 밤에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일하는 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승무원을 보고 있을 때, 엄마는 딸을 보고 있었다.


승객들이  승무원이 무슨 메뉴를 말할까 궁금해  , 엄마는 콜라병을  열어서 아둥바둥하는 자신의 어린 딸이 눈에 밟혔다. 집에서 무거운 것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아이가 본인보다 무거운 카트를 잡아당기 것을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냥 바라보는  엄마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저 자신이 일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줄 알았던  딸은, 엄마의 마음을 조금도 알지를 못하는 철부지였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유튜브를 하거나, 웹소설을 쓰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내가 하는 것들이 늘어날 수록 내가   있는 시간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자고, 밥이라도 한끼 제대로 먹는 것을 바란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거라 하면 "그래 그래,  생각했어 얼른  먹고 ." 라고 오히려 반기신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기는 불가능 한가보다. 글을 쓰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은 콜라병  안들고   있었어? 사람들이 자서    있었어?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일단 얼른 .  시간 줄어든다. 엄마랑은 자고 연락해." 하며 전화를 후다닥 끊는 엄마에 괜히 목구멍이 뜨겁다.


전화 끝에 괜히  엄마에게 어린 딸은 응석을 부려본다.




"엄마, 나 불고기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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