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절망의 연속이었던 승무원 준비생의 시간들.
'최종 입사 합격'이 취소되었다. 살면서 이런 말을 경험을 해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승준생(승무원 취준생)을 시작하고 두 달 만에 한 외항사 최종 합격하게 된다. 하지만 대행사로 낀 학원과 학원생들 간의 문제가 터졌고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채용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당시 비학원생였던 나는 억울함을 어디다가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삼켜야 했다.
그렇게 승준생의 나날이 이어지다가, 다시 한번 홍콩의 모항공사에 합격하게 되었다. 유가파동으로 채용이 가뭄에 콩 나듯 하던 시절이라 면접 자체가 귀했는데 합격을 거머 줄 수 있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기뻤다.
하지만 너무 들떠버린 걸까.
홍콩은 비자를 받는 게 워낙 대기가 길어서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나 역시도 그렇게 반년 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슬 주변에서 언제 가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자꾸 "가긴 가는 거냐" 묻는 질문들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나를 알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내심 부모님도 걱정하시는 듯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설날 연휴의 첫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집에 왔는데 갑자기 단톡방에 불이 났다. 드디어 인고의 시간을 끝내고 입사하는구나 하고 카톡방을 누르였는데, 같이 기다리던 친한 동생의 카톡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니 우리 어떻게 해..."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단톡방을 뒤로, 떨리는 손으로 메일함을 간신히 눌렀다. 감감무소식이던 항공사에서 '긴급'이라는 빨간 글자와 함께 온 이메일에 눈이 질끈 감겼다.
'회사의 사정으로 외국인 승무원들의 채용을 취소한다'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그 뒤에 차이니스 뉴 이어 기간이라 당분간 오피스 연락이 안 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과호흡이라는 것을 처음 겪었다. 목구멍에서 문을 긁히는 듯한 끼-익 소리와 함께 숨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가족들에게 들통나버릴 것 같아 냅다 패딩을 뒤집어쓰고 집 앞 한강으로 향했다. 입사를 지금까지 기다려준 부모님께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정처 없이 몇 시간을 걸었다. 수없이 면접에서 떨어져도 기죽지 않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었는데 이번에는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았다. 서울의 야경이 비치는 한강의 검은 물결은 따뜻해 보였다. 저 깊은 어둠에 들어가면 이 모든 것들을 다 감싸 안아줄 것 같았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었다. 이게 내 운명일지라도 내가 나를 이겨내기로 했다.
내가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하는 것'이다. 실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기도 하다. 취준 생활을 보내면서 불안이 찾아오는 날이면 이력서를 한 개라도 더 쓰고 잤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그냥 하는 것' 그렇게 극복하기로 했다.
며칠 만에 다시 일어나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향했다. 채용을 검색하고 이력서를 다시 쓰는 일은 속이 까맣게 문 들어져 버리는 일이었지만 그런 거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었고 밤에는 한강을 걸으면서 울었지만 아침에는 반드시 이력서를 쓰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써댔고, 냅다 해외 말레이시아의 모 항공사에 면접을 보러 갔으며 한 달만에 다시 최종 합격 카드를 쥘 수 있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라고 쓸 것 같지만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출국하기 한 달 전, 갑자기 아시안이 합격하기 그렇게 힘들다던 중동의 모 항공사가 10년 만에 대뜸 한국에 채용을 열었다. 이미 수많은 합격과 탈락에 지친 상황이라 그냥 정해진 항공사로 가야지 싶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가 내 인생의 모토였고, 나는 근성의 조이유였다. 기어이 비바람을 뚫고 면접장에 갔고 쇼미 더 머니의 무명의 래퍼가 기적을 이루듯 자꾸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끝에,
12,000 :15의 경쟁을 뚫고, 중동 3사로 알려진 금빛 사막 위의 항공사에 입성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벚꽃이 흐드러지던 그때의 봄을 생각한다. 나에게 절망과 행복. 둘 다 가득한 해였다.
매일이 다르고, 앞으로 인생을 한 치 앞을 모르던 날들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누군가는 그저 손쉽게 합격하는 이 길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렵냐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힘듦이 당신에게 위로가 된다면 얼마든지 딛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저 사람처럼 최종 입사 번복을 당하지는 않았잖아. 아직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바라본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고, 그대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
당신의 찬란한 봄을 그 누구보다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