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 할머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오늘도 틀니를 손보러 오셨다. 걷기 힘드신 팔십 노인께서 겨우겨우 한 걸음씩 떼어 오시느라 숨도 한껏 차오르시고, 세월이 얼굴에 그려놓은 주름위로 땀도 맺히셨다.
아픈 곳이 잇몸 어딘지 묻는 내게 할머니는 스카치 캔디 서너 개를 쥐어주시며 이런 거 안 먹을랑가, 하신다. 나는 얼른 받아 들고는 저 이거 엄청 좋아해요, 하며 이 사탕들 중에서 육각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입 속에서 퍼지는 달콤한 커피 향은 내 어린 시절 젊었던 아빠 모습이 된다.
엄하고 무서웠던 아빠.
그래도 나는 늦둥이 막내라고 매우 예뻐하셨다.
아빠가 좋아하던 스카치 캔디는 항상 다락방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매일같이 쪼르르 다락방에 올라가 아빠꺼, 내꺼 스카치캔디를 가져와 먹었다.
아빠를 따라 날계란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별로였는데 아빠가 드시니 따라 먹었던 것 같다.
내가 10살 때까지도 아빠는 나를 업고 주말마다 오르막길을 걷고, 육교를 건너
20분을 걸어서 외할머니 집에 가곤 했다.
지금 10살 아이를 키우는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아빠는 참 대단했다.
눈 오는 날이면
7시 스쿨버스가 오기 전까지,
새벽 내내 쌓인 눈을
막내딸 학교 가는 길 미끄러울까 봐
집 현관부터 버스정류장까지 다 쓸어놓고 출근하시곤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게으른 엄마라서
그 시절 아빠처럼
눈 오는 날 새벽에 아이를 위해 빗자루를 드는 일이나
다리가 길어진 아이를 업고 계단을 오르고 쉼 없이 걷는 일도 못하지만,
그런 사랑 덕분에
나는 이렇게 단단하게 살아간다.
나도 아빠처럼 내 아이들에게
따뜻함을 지니고 살아갈 힘을 주는
깊은 사랑을 주어야 할 텐데.
아빠는 은퇴 후에도 쭉 일을 놓지 않으시다가 최근에서야 쉬게 되셨다.
평생 취미도 없이 하던 일을 안 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로
산책을 하시거나 유튜브를 본다고 하셨다.
나도 은퇴 후에 아빠처럼 심심해질까?
오랜만에 스카치 캔디 한 봉지 사다 드려야겠다.
어머님은 스카치 캔디 좋아하시나 보네~
나, 뭐, 심심항께 그냥 갖고 다님서 먹어.
나도 이거 좋아해요.
그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거 안 먹는 줄 알았드만~
이제 틀니 새로 했으니까 사탕보다 맛난 거 많이 드세요.
어제도 원장님은 술을 드셨는지 쓰린 속을 붙잡으며 데스크에 와서 손을 쑥 내미신다. 나는 할머니께 받은 스카치 캔디 세 개를 원장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3만 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