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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Dec 24. 2024

토북이 이야기(14)

다른 이들과 함께하게 되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겠어." 토끼는 입을 삐죽거리며 이내 자식에게 다가가 말했다. "얘들아, 수고했어. 엄마랑 아빠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이에 토북이들은 저마다 미소를 지으며 부모님을 안아주었다. 거북이가 토북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부터는 너희들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많을 거다. 너무 힘들면 돌아와도 돼. 하지만 앞으로 나가보렴. 비록 다치고 넘어져서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에 첫째 토북이가 말했다. "별 걱정 마세요. 저는 준비가 됐으니까요." 이에 셋째 토북이도 오빠를 따라 말했다. "저도 준비가 되었다고요." 이에 엄마 토끼가 셋째를 데리고 와 품에 안으며 말했다. "넌 아직 멀었어." 이에 셋째가 입을 삐죽거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언니보다 훨씬 더 잘 살 것 같은데." 이에 오빠 토북이가 셋째의 머리를 콩 때리며 말했다. "못하는 소리가 없다." 셋째가 바닥에 드러 누우면서 버둥거렸다. "으아앙 나도 같이 갈래." 이에 엄마 토끼가 셋째를 굴리면서 말했다. "안 된다고 했지. 나가면 또 집 들어오고 싶어 할 거면서." 첫째와 둘째는 이런 가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뒤, 둘은 원래 있었던 자리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때, 둘째 토북이는 온몸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를 보았다. "오빠... 나 뭔가 이상해." 갑자기 어디선가 모래바람이 불어와 눈앞을 흐리게 만들자, 첫째는 둘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놓치지 마." 둘째는 안간힘을 써서 오빠에게 매달렸지만 결국에 손을 놓치고 말았다.

    둘째는 체념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오빠!! 나중에 다시 만나!! 오빠는 오빠의 경주를 해!!" 모래바람에 날아간 둘째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힘들어, 여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왔는데 한순간에 돌아가는 건 이리 쉬운 일이구나. 공들인 탑이 아니었나 봐.' 둘째 토북이의 눈물은 모래바람에 의해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 후, 토북이가 눈을 뜨자, 자신은 커다란 모래 언덕 아래에 묻혀 있었다. 아무리 발로 모래를 파도 나올 수가 없자, 토북이는 울기 시작했다. "왜, 나만. 나만 힘이 부족한 건데.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경주가 이렇게 힘들어? 남들은 다 잘 가기만 하는데 나만 왜 이러냐고!!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건데!!" 그렇게 한참을 통곡하고 나서 토북이는 다시 앞발로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면 팔수록 그녀는 모래에 더 파묻히게 되었다. 토북이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는 '번아웃'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번아웃이 지속되면 우울증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다년간 겪어본 느낌에 의하면 성급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었다.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맥없이 모래에 파묻히는 토북이 위로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기어 왔다. 그 거북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 다 함께 토북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얘들아, 이거 봐봐, 거북이 다리에 토끼 귀가 있어!! 죽은 건가?" 이에 다른 거북이가 말했다. "토북이? 소문을 들었는데 토북이 한 마리가 경찰 아저씨한테 잘 말해서 사막을 살렸다는데?" 아기 거북이들의 이야기에 토북이는 속으로 웃었다. '귀엽네, 소문이 이렇게 와전될 수가 있구나.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뿐인데...' 잠시 후, 작은 거북이들은 열심히 모래를 파며 토북이를 꺼내려고 했다. 이에 토북이가 말했다. "얘들아, 괜히 그러지 마렴. 너네들까지 파묻히면 위로 올라가기 힘들 거야." 이에 작은 거북이가 말했다. "그럼 아래로 굴을 파서 길을 만들면 되잖아요." 이에 토북이의 눈이 크고 동그래졌다. "아!" 토북이는 감탄하며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낼 수가 있는 거야?" 이에 작은 거북이들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바보." 그들은 굴을 파며 소리쳤다. "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 이에 토북이도 열심히 파기 시작했다. 그때, 또 다른 아기 거북이가 토북이의 등에 난 선인장과 꽃을 보며 말했다. "우와!! 선인장 꽃이다!! 등에 선인장이 있어!!" 이에 다른 거북이들도 일제히 토북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토북이가 쑥스러워하며 땅을 계속 파자, 한 거북이가 그녀의 등에 타며 물었다. "언니가 그 유명한 둘째 토북이에요?"

    이 말에 토북이가 물었다. "내가 유명하다고?" 이에 다른 거북이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자신이 영웅으로 칭송받는다는 사실도 몰라요? 등에 선인장이 자라고 꽃을 길에 뿌리고 다니는 토북이가 당당하게 독수리 아저씨를 설득하고 사막 동물들을 이끌어서 호랑이를 처리했다는 소문이 저 멀리 뒤쪽까지도 전해졌는데도요?" 이에 토북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네가 생각하는 만큼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야." 토북이는 그 자리에 앉아 아기 거북이들에게 이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에 거북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으앙! 너무 슬퍼..." 이에 당황한 토북이가 아기 거북이들을 달래며 말했다. "얘들아, 울지 마. 너네들도 크면 다 겪게 될 건데, 슬퍼하지 마." 이에 작은 거북이들은 힘을 합쳐 모래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토북이는 거북이들이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얘들아, 너네는 빠져나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는 거니?" 이에 토북이의 등에서 선인장 과육을 배부르게 먹고 배까지 땅땅 두드리던 아기 거북이 말했다.

   "우리들은 그런 거 잘 알아요. 이리저리 마음껏 다녀봐서 길을 못 찾아도 시도하거든요." 이에 토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계속 도전하는구나." 이내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은 거북이들은 토북이의 등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 같이 손을 잡아 밧줄처럼 토북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영차, 영차, 영차!" 토북이가 올라오자, 거북이들은 전부 쓰러져서 한숨을 쉬었다. "근데 왜 이렇게 무거워요." 토북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너네만큼 작고 가벼울 때가 있었는데..." 작은 거북이들은 이내 토북이 옆에 옹기종기 모이며 말했다. "같이 가요!!" 이에 토북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처음 느껴보는 온기와 행복함을 주체할 수 없던 토북이는 비로소 함께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아기 거북이들과 함께 하는 길에 토북이는 더 이상 손으로 일일히 꽃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등에 만개한 선인장 꽃이 흩날리며 그 잎들을 주워 즐겁게 뿌리는 아기 거북이들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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