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한편, 아이들이 다 떠나고 둘만 남게 된 토끼와 거북이는 천천히 걸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토끼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언제 우리 새끼들이 저렇게 다 컸는지. 꼬물거리면서 젖 달라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에 거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네. 누굴 닮아서 하나같이 다들 속을 썩이는지." 이에 토끼가 말했다. 누가 봐도 당신을 닮은 거겠지." 이에 거북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뭐가 어때서. 뭐만 하면 나 닮았다네." 이에 토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거북이가 잠시 멈춰 서서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이겨먹으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그때 내가 당신이랑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까 비겁하게 단거리 경주를 하자고 했었잖아. 내가 그건 너무 하다고 장거리로 바꾸자고 해서 그제야 공평하게 경주를 했지. 지금 우리 애들이 스스로 결승선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결승선을 같이 만들어 놓고 출발점에서 열심히 기어, 아니 뛰어갔지." 이에 토끼가 끼어들며 말했다. "아니 내가 전날 잠을 못 자서 깜빡 잠들어 버린 거라니까. 그렇게 자도 나는 자기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미스터리야." 이에 거북이가 말했다. "천천히 꾸준히 가는 게 최고라니까."
그 당시, 장거리 경주를 하고 있던 광경을 보고 있던 주선자는 조마조마하며 거북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에 토끼가 째려보자 입을 꾹 닫고는 거북이에게 힘내라는 눈빛을 보냈다. 토끼는 열심히 가다가 전날 밤 설레서 잠이 안 온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니 거북이가 전속력을 다해 기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냥 져야 하나. 보면 볼수록 진국인데. 이런 거북이 또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승부욕이 강했던 토끼는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 결국 힘도 빠지고 잠도 와서 바위에 잠시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 힘들어... 저 멀리에 있으니까. 딱 10분만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 뛰면 이길 수 있겠네." 하지만 그 10분은 1시간이 되었고 결국 잠에서 깼을 땐 더 뛰기 싫어진 토끼였다. '내가 거북이 이겨먹어서 뭣 하겠어.' 그녀는 빨리 뛰는 척하며 결국에는 거북이에게 져 버렸다. 놀리는 친구 토끼들 사이에 있는 토끼에게 거북이가 다가와 그녀의 앞발에 자신의 앞발을 포개었다. 이에 토끼 친구들은 놀라며 저마다 주책을 떨며 자리를 비켜주며 지켜보았다. "내가 널 이겼으니, 이제는 나 어떻게 생각해? 나 꽤 괜찮지 않아?" 이에 토끼는 삐죽거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거북이는 빨개진 얼굴로 숨을 고른 후,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너보다 속도는 느려도 널 좋아하는 심장 박동은 빨라. 나랑 사귀자." 이에 토끼는 얼굴을 붉히며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나 좋다는 다른 토끼 오빠들은 어쩌지? 하긴 전부 다 자기 자랑에 허세에 절어서 맨날 자기가 경주 몇 번 이겼다는 말 밖에 못하는 오빠들보다는 저 미련탱이 거북이가 나을지도.' 토끼는 자신만 바라보는 거북이가 이해가 안 됐지만 결국 그와 사귀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물었다. "그때, 나한테 왜 결혼하자고 했던 거야?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데?" 이에 거북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좋았어. 똑 부러지는 성격도, 쉽게 화내는 것도,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 전부 다." 이에 토끼가 말했다. "뭐래." 그러고는 거북이의 등딱지에 몸을 살짝 기댔다. 거북이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 이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잠 오는 거 겨우 겨우 이겨가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이에 토끼가 말했다. "내가 이겼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이에 거북이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주면서 꼬시려고 했지." 거북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나랑 왜 결혼했어?" 이에 토끼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냥, 내가 만난 다른 토끼들이나 동물들하고 좀 달랐어." 이에 거북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아니, 구체적으로." 이에 토끼는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튀었다. "비밀이지롱!" 거북이는 저 멀리 뛰어가는 토끼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매력있어. 아, 좀 기다려!! 여편네가 성질 급한 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