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를 향해 돌아가다
할머니와 함께 휩쓸려온 곳을 바라보며 반가운 마음에 이리저리 기어 다니던 토북이는 또다시 축 처져있는 토끼 귀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며 그리고 기어갔다. "오빠, 나와." 할머니도 이윽고 그쪽으로 기어가 단잠에 빠진 오빠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고, 인석아, 여기서 잠들면 입 돌아간다. 햇빛에 구워지고 싶으냐." 이에 오빠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말했다. "이미 구워질 데로 구워졌는데요 뭐, 원래 우리 조상님은 초록 등딱지를 가지고 있었잖아요." 이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외가 쪽도 이렇게까지 귀가 길진 않았단다. 근데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이렇게 다 변한 게 아니겠니." 오빠가 몸을 쭉 빼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변하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 건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에 토북이는 답답한 마음에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번엔 또 뭔 일 때문이야. 잘 가고 있다가 한 번씩 이러는 오빠가 이해가 안 된다니까." 토북이가 물었다. "오빠도 모래바람에 휩쓸려 왔어?" 이에 오빠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거대한 모래 폭풍이었어. 내가 겪은 것 중에서 가장 큰 거였다고. 모래바람을 겪을 때마다 매번 처음인 규모지만 이번엔 진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어. 내가 그때동안 뛰어간 발자국은 다 바람에 날려가고 난 지금 여기서 나아갈 수가 없어." 이에 토북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아갈 수 없으면 돌아가자. 엄마랑 아빠, 막내가 있는 곳으로 같이 가자." 오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서 나아가려 했으나 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나아갈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할머니는 그런 오빠를 열심히 설득하며 아까 토북이에게 해주었던 얘기를 해주었다. 한참 후, 오빠는 설득이 되었는지 천천히 뒤돌아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지만 오빠도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다는 것을 받아들인 듯했다. 토북이가 말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랬어. 모래바람이 와도 함께니까 버텨낼 수 있을 거야."
그러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경주는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거란다. 그렇게 돌아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이유와 가족이 함께여야 하는 이유가. 그러니 우리 다 같이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들은 새로운 모래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잠시 쉬기로 하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는 토북이와 헤어져 있는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나 혼자 사막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길을 찾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 작은 결승선을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지. 이미 만들어진, 큰 결승선만 향해 무작정 뛰어가고 있었던 거야. 나한테 소중한 게 뭔지도 모른 체 그냥 달렸어. 그러다 보니 모래바람이 왔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지. 내 밑바닥을 마주하게 되고 생채기도 심하게 났지.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걸 아는데, 이겨내지 못하면 멍청한 건데, 나는... 도망치고 싶었어." 이에 토북이가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도 재능이야. 대단한 거라고." 이윽고 토북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그런 오빠의 경주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 나는 집중이 안 되는데 오빠는 집중력도 높아서 정해진 목표가 있으면 무조건 끝까지 빨리 뛰어갈 수 있잖아. 가끔씩 무너질 때 심하게 무너지지만 빠른 토끼 발을 가지고서 성실히 나아가는 게 부러웠다고. 그때마다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했어, 내가 약해서 그렇다며, 끈기를 가지라고 사막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고 오빠가 그랬잖아!!"
이에 오빠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사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야. 경험해 보고 여러 번 넘어지고 내가 스스로 고치고 싶었던 것들을 너에게 말해줬던 거야.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이에 할머니가 둘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꼭 스스로의 문제를 혼자서 각자 해결할 필요는 없단다. 봐라, 너희들이 이야기하면서 서로 닮고 싶은 점이 다르잖니. 그러니 서로 보완해 줄 수 있어. 조언을 해 줄 수 있어. 물론 선택은 각자 하는 거지만, 힘들 때는 기댈 수 있단다. 그게 가족이 아니겠니." 이에 토북이와 오빠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멀리서 오고 있는 모래바람을 느낀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함께 바람을 타고 날아가 보자꾸나. 한 마리의 새처럼 가볍게 슬픔, 수치심, 열등감을 휘날리며 행복으로 바꿔보지 않으련? 마주 보았으니 이제 다시 움직일 차례란다.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해보는 거야. 가끔은 그러는 게 좋은 방법이기도 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