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도 소중한 것
말을 안 하는 동생을 꾸역꾸역 데리고 할머니와 오빠를 찾으러 간 토북이는 엄마, 아빠와 마주쳤다. 엄마는 막내를 보자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팍 돌렸고, 아빠는 한숨을 쉬었다. 토북이는 부모님께 가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에 부모님은 서둘러 할머니와 오빠를 찾으러 갔고, 그 뒤를 토북이와 막내가 따랐다. 가는 길에 막내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요. 엄마, 아빠는 필요 없다는 말 한 거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막내가 울먹거리자, 아빠는 그런 막내를 말없이 안아주었고,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토북이가 빤히 바라보자 마지못해 막내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실수할 수 있지. 하지만 네가 한 말은 정말 우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었어."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혼자 잘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모래바람이 너무 세서 날아가다가 아무도 없는데 떨어지고, 상처도 나고, 또, 으앙~" 부모님은 우는 막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토북이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어렸을 때를 회상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와 오빠가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보자 다가가서 포옹을 나눴다. 아빠는 할머니께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밝은 미소로 다가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토북이는 엄마 옆으로 가서 속삭였다. "엄마, 아빠가 원래 저렇게 말이 많았어요?" 이에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쎄... 할머니만 만나면 말이 많아지더라. 내가 딸인데 할머니는 나보다 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어찌 보면..." 말은 그렇게 해도 흐뭇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바라보며 토북이는 의아해했다. "저렇게 사이가 좋은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이에 엄마가 말했다. "너네 아빠는 부모로부터도, 형제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했어. 그런데 너희 할머니는 사위를 친아들처럼 대해주잖니. 너네 할머니도 자식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는데 아빠가 참 든든하실 거야." 이에 토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아빠가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안도가 돼요. 마지막으로 뵀을 때 너무 힘들어 보이셨거든요."
이에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유, 말도 마라. 너네 동생 사춘기 시작돼서 아주 그냥 부모를 잡아먹을라 그런다. 혼자서 경주를 하겠다고 억지로 빠르게 기어가지를 않나, 너네 따라잡아서 나중에는 추월할 거라고 허세를 부리질 않나. 내가 경고했는데 안 듣다가 저렇게 꼭 경험을 해봐야 알고... 에휴..."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오빠에게로 뛰어갔다. "아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네 동생한테 들었는데 고생 많이 했다며? 자세하게 엄마한테 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 그러자 오빠는 머뭇거리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다 쏟아내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오빠가 그렇게 대성통곡하는 건 처음 보는 터라 둘째와 막내는 눈이 동그래졌다. '오빠도 저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구나.' 오빠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할머니 말씀대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차근차근 다시 나아가고 싶어서요. 근데 이때까지 경주를 하는데 엄마 아빠가 많이 희생했는데... 저는 중간에 포기하고..." 이에 아빠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희생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기꺼이 한 거야. 너네가 우리 자식이니까. 그거에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너는 이제 네 멘탈을 잡고 네가 원하는 방향도 새로 잡아서 나아가면 된다. 우리는 정말 그거면 돼." 이에 오빠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저...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리, 아무리 나아가도 제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결승선이 끝나지도 않아요. 얼마나 더 가야 편해지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에 아빠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사막의 경주다. 한 번 모래바람이 불면 걷잡을 수 없이 뒤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가끔은 쉬어주기도 해야 한단다. 다시 어떤 경주를 할지 생각도 해보고 주위의 행복도 다 살펴보면서 나아가는 거야. 그렇게 해야 오랫동안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어. 이 경주는 누가 먼저 결승선을 다 건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결승선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고, 끝도 없기 때문이지.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죽음을 향해 가는 거야." 이에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토북이는 자신의 등에 난 선인장 열매를 전부 떨어뜨리며 말했다. "다들 먹어요." 이를 바라보면 오빠가 물었다. "너 그거 어떻게 한 거냐." 이에 토북이가 말했다. "어떻게 하긴, 선인장이 많이 있는 지역에 가서 꽃도 따고 길에다가 뿌리고 많이 관찰하고 지내다 보니 내 등에 쌓인 흙이 비슷한 성질을 띠더니 꽃도 펴낼 수 있게 됐지, 뭐야. 나도 모르게 된 일이야." 이에 할머니가 말했다. "때로는 자신이 모르게 한 작고 소중한 것들이 거대한 것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천천히 나아가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