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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가까운 산(9)

by 김헌삼 Mar 11. 2025

영남알프스 억새능선      



  늦가을로 접어들며 산야를 오색으로 수놓고 있던 단풍들이 모두 져버리고 나면 나무 없는 민둥산이 제철인 듯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것은 여름 내내 태양열과 비바람에 시달리는 가운데 몸을 만들어온 억새들 줄기에서 은빛 이삭이 피어나와 살랑거리는 바람결을 타고 일제히 고갯짓하며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가로이 떠도는 조각구름뿐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억새들 사이로 걷는 기분 또한 마냥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양산의 취서산¹에서 시작하여 북으로 달리며 신불,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배내고개를 지나 서쪽으로 뻗은 천황, 재약산까지의 산릉, 그리고 이들이 포용하고 있는 일대는 영남알프스라 부르는 억새밭 고원으로서, 한편으로 보면 풀만 무성한 황야이나 ‘억새천국’이라는 찬사가 붙은 곳이다. 

  90년 11월 초 이곳을 찾아 우리 일행이 취서산 산문(山門) 옆 주차장에 당도했을 때는 해 뜨기 전이었지만 산문을 지나 지산마을로 접어들 무렵부터 햇살이 퍼지면서 산을 감싸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해의 빛살을 받으며 암록으로 어둑했던 산색이 주황으로 변해가며 정상 부근을 비롯하여 산 전체는 거대한 황금 덩어리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취서산(鷲棲山)은 해발 1,059미터나 되지만 정상을 이루는 거대한 바윗덩어리 동면은 깎은 듯 수직을 이루고 있어 해 뜨는 쪽을 향해 앉아있는 스핑크스와 같은 특이한 모양이다. 그 모습 또한 뚜렷하여 산 아래 어디서도 처음부터 볼 수 있어 이를 목표 삼아 접근하면 된다. 정상은 산문에서 걷기 시작하여 2시간 반이면 도달한다. 억새의 장관은 여기서 비로소 보게 된다. 시야가 거칠 것 없이 트여, 서북쪽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흰색 건물은 교실 하나에 전교 학생 수가 3,4명에 불과하다는 해발 8백 미터의 고사리분교²로서 인근 사자평과 함께 아득하다. 정북 방향으로는 신불, 간월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릿지를 경계로 하여 오른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암릉이다. 왼편으로는 끝 간 데를 가늠하기 어려운 완만한 억새초원이 펼쳐있다. 

  이러한 풍경은 내 눈으로는 처음 접하는 경이로운 세계였다. 애초에 어떻게 해서 넓은 고원에 나무는 없이 억새 풀만 무성히 자라나게 되었을까. 나무가 많고 숲이 무성한 여느 산과는 달리 억새 벌은 기껏해야 사람 키 정도 또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크기의 풀 무리로 되어있다. 특별히 디딜 곳을 고르는 등 잔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은백색 관을 두른 듯한 황금 산릉이 그지없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좋은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망망한 바다처럼 티 없이 높은 하늘은 왜 그토록 파랗게 보이는 것일까. 억새는 그 잎이 초록에서 주황의 색조를 띠었다가 누렇게 퇴색해가고 꽃은 애초에는 갈색계통의 긴 이삭으로 나왔다가 온통 흰색으로 변하여 하늘거린다. 은백색의 무리가 독특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굳이 해답을 알자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타고 흐르는 감성의 용솟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새삼 자문해본다. 

  애초에 우리는 신불산까지만 올랐다가 신불고개로 되 내려와 가천리 목장 쪽으로 하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불산(神佛山 1,209m)에 이르러 마음이 바뀌어 기왕이면 회귀하는 것보다는 건너편 쪽 간월재로 내려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간월재에 이르니 조금만 더 가 간월산도 이참에 등정하자는 쪽으로 중론이 기울었다. 간월산(肝月山  1,083m)에 올라보니 여기서 더 가더라도 줄곧 내림 길이니 배내고개로 하여 석남사 입구까지 가야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를 붙여 그곳으로 향하기로 다시 연장하였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억새능선은 신물 나도록 이어졌지만 그래도 신물이 나지 않는 마력이 있었다. 간월산까지 오는 동안 6시간 이상 소요되었고 우리가 순수하게 걸은 시간만도 5시간이 넘었으니 모두 지쳐있는 기색이었다. 누군가가 중간에 내려가자 한마디만 튕겼더라면 사정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길이 있으므로 나아가듯이 계속 앞을 향하여 걸을 뿐이었다. 

  배내고개로 향하는 길은 밋밋한 내림 길이라 힘이 덜 드는 편이었지만 생각보다는 긴 거리였고 많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홀로 천황산으로 올라 우리가 지나온 영취산을 간다는 한 젊은 여자의 활기찬 모습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력을 불어넣어 배내고개까지 갈 수 있었으나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차가 닿는 석남사 휴게소 쪽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하게 멀리 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배내고개 이후는 찻길이었고 가끔 일반 차량이 지나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차라도 우리 일행 5명이 끼어 탈 여력이 있는 듯하면 손을 흔들어 세워주기를 기대하였으나 대부분 못 본 체 그대로 지나쳤다. 드넓은 사막 가운데에도 오아시스가 있듯이 각박함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도 한줄기의 온정은 살아있었다. 마침내 앳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또래의 동료를 옆에 태우고 타이탄 트럭을 운전하고 지나다가 세워준다. 곡물 자루 등을 잔뜩 실은 화물칸에 아무렇게나 끼어 타 구부러진 길을 돌 때 한없이 뒤흔들렸어도 몸과 마음이 편안했으며 휴게소 부근에 내려 고마움의 표시로 적절히 사례하려 했으나 굳이 사양한다. 그 순수한 친절에 9시간 동안 누적된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가듯 하니 도대체 우리의 신체구조와 심리상태는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행 중 힘들 때 ‘누가 돈 주고 하라면 안 할 짓’이란 말을 흔히 쓰고 듣는다. 천금을 주어도 하라면 안 할 고행을 비용을 들여가면서 자의(自意)로 기꺼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저 좋아서’일 뿐이다. 거기에는 좋아하는 산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으며 고역을 감내하면 반드시 뒤따르는 성취감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지만 산행은 어떤 경우에도 후회되지 않으며 다만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92.11)               

¹ 양산시는 그동안 영축산과 영취산, 취서산과 축서산 등 4가지로 쓰여 혼선을 빚어왔던 명칭을 2001년 1월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였다.      

²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로서 1966년 4월 29일 개교하여 졸업생 36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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