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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Jan 28. 2022

저마다의 구석들

외워주기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구석이 있다. 혈액형, 별자리, MBTI로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갖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그런 성격의 사람이, 그런 성장과정을 거쳐,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일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최신 버전의 그 사람의 구석이 궁금하다.



사람들의 그런 구석을 알아내는 데에는 몇 개의 방법이 있다. 제일 손쉬운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술을 진탕 먹는 거다. 술을 먹어야만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나같이 사람을 만날 때 의식적으로 긴장하는 사람들은 더 하다. 긴장이 풀릴 때의 나와 긴장해있을 때의 나 중에 누가 사회적으로 더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구석은 그런 시간에 툭 나올 때가 많다.



하지만 가감 없는 말이 곧 솔직한 말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술이 아닌 카페 음료를 마시며 나와 대화하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그렇다. 나에게 밥-술이 아니라 밥-카페 루트인 점심 약속은 정말 드물다. 그런데도 가끔씩 낮시간에 만나는 한 친구가 있다. 밥 먹고 같이 공원을 가곤 했으니 편의상 '공원이'라고 하겠다.



공원이는 나처럼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키 크고 얌전한 친구다. 정말로 공원이를 떠올리면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자세를 취한 적이 없는데도 두 손을 모으고 앉아있는 공원이가 떠오를 정도로 그녀는 나에게 얌전의 인간화다. 나와 공원이는 둘 다 나름 타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갖고 있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학생 시절 때의 흑역사 이야기부터 부모님과 겪었던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곧잘 넘어간다.



나는 스트로베리 요거트 스무디를 먹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구석을 알 수 있다는 걸 그녀로 인해 알았다. 공원이는 아빠가 없다. 공원이의 나이 16살에 그녀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그 아빠라는 사람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괜찮은 아빠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그녀는 엄마와 둘이서 살았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언성을 높여가며 심하게 다툴 때가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엄마가 내뱉는 -한 시간 뒤에는 후회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 중 그녀가 제일 끔찍해했던 말은 '저게 아빠 닮아가지고'였다. 공원이는 그 말을 떠올릴 때 항상 머리 뒤통수 두피에 소름이 돋는다.



사람들의 구석에는 배꼽 잡게 웃긴 것들, 말도 안 되게 야한 것들, 미간이 찌푸려지는 더러운 것들, 그리고 아픈 것들이 있다. 공원이처럼 귀하고 드문 기회로 나에게 자신의 구석을 보여줬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머릿속에도 나의 유별나고도 묘한 것들이 기억되어 있을 테다. 서로의 대단치 않은 구석들을 외워주는 것은 어떤 깊이의 사랑인가.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픈 구석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한다. 엄마가 쏘아붙이듯 한 그 말에 얼굴이 일그러져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던 그녀에게 엄마는 이제 똑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건드리지 않아야 할 상처 난 구석을 아는 건 사랑의 필수적인 행위일 것이다.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하는 이에게 보듬어져야 할 독특하게 아픈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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