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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Nov 19. 2021

면 100% 액세서리

생긴 대로 살면 안 될까요


이제야 서랍장이 널널하다. 입지도 않는데 자리만 차지하던 액세서리들을 서랍에서 싹 청소해버렸다. 몇 개월 전에 이사를 하면서 그래도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겠지 하고 한두 개 갖고 있던 철이 박힌 액세서리도 버려 버렸다. 이제 와이어도 없고 캡도 없는, 면 100% 액세서리 두 개만 남았다.   



이건 브라 이야기다. 나는 20살부터 조금씩 노브라가 일상이 되어가다가 지금은 입는 날이 일 년 중 손에 꼽는다. 그런데 '노브라'는 사실 요즘은 잘 보이지도 않는 단어다. 왜 사라졌을까를 생각해봤다. 애초에 브래이지어는 여성만 착용한다. 인간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속옷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라가 없는 상태가 곧 여성의 원래 몸이니, 이제는 '노브라'가 괜히 새삼스럽고 구태의연한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도저히 사석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주제가 아니어서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떤 브라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365일을 '유브라'로 사는 사람은 정말 몇 안될 것이다.



나는 캡이 부착돼있는 민소매 티 같은 정도도 외출 내내 입고 있으면 갑갑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겨울이야 상관없지만 여름엔 니플 커버 때문에 실리콘 패치부터 다이소 패치까지 다양하게 쓴다. 그런데 이게 또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다. 애초에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가슴이 돌출되어 있으니 커버가 더 까다롭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존재 아닌가. 노브라의 자연스럽고 편한 맛을 보고 나니 니플 커버도 굳이 해야 하는 건가 싶다. 그냥 생긴 대로 살면 안 될까요.  



2년 전쯤 만난 보수적인 성향의 한 남성은 내가 브라를 안 입는 걸 알고 나서 바로 왜냐고 물었다. '그냥 이게 편해서'라고 답하니 그래도 다른 여자들은 다 입지 않냐고 했다. 다음날 헤어질 때에는 웬만하면 브라를 하고 다니라는 충고를 날렸다. 정확히 그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적어도 나보다는 브라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브라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좋은 추억이 더 많을 것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브라를 점점 더 떠나보내야 할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혹은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노브라 여성이 좋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보통 성희롱을 포함하는데, 특히 여성 연예인들이 표적이 된다. 사실 온라인 상 이와 같은 발언은 정말로 누군가의 가슴 모양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표현이라기보다 '이렇게 성적 대상화를 당해도 계속 너의 생각대로 노브라를 할 수 있겠냐'의 뉘앙스를 담은 일종의 테스트로 보인다.



“브래이지어는 액세서리다.”라는 말은 故설리 님이 한 예능프로에서 꺼낸 말이었다. 이 사회는 어디서나 개혁을 외치고, 선구자로서의 영웅을 바라지만 여성의 얼굴을 한 뛰어난 혁명가들을 많이도 짓밟았다. 주류 담론을 깨고 자신을 넘어 집단을 대변하며, 비난에 맞서 존재한 그녀는 말 그대로 혁명가 자체였다. 삶에서 자유롭고자 애썼던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거나 감내하는 방법으로 다른 여성들에게 ‘생긴 대로 살아가는 법’의 한 선택지를 주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의 뜨겁고 선한 영향력은 사회가 돌아가는 에너지이다. 젊고 자유로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길,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이쯤 되면 속옷 하나를 입느냐 마느냐에 무슨 혁명이니 자유니 하며 웃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브라 안 입고 싶은 여성이 왜 이렇게까지 신념적이어야 할까. 이 글도 쓸데없이 길다. 노브라에 대해서 뭘 이렇게나 얘기할 게 있는지. 웃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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