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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재 Aug 29. 2023

질문하는 이

지혜와 현명의 계보

질문하는 일은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모든 질문이 그것의 위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이 초심자의 위치에서 던져지는 질문이라면 어떤 질문은 그 분야의 외부자가 던지는 질문이고, 또 어떤 질문은 경험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질문의 위치는 보통 질문하는 사람이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하기에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적절한지를 따져보게 된다는 점도 질문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친구, 선배, 후배, 동료, 연인, 부모, 선생님... 각양각색의 관계들 중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서 크고 작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삶에는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들의 좋은 답변에 기대어 혼자서는 힘들었을 어떤 문제를 넘어가는 때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나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 싫은 마음은 어디서 기인하는 마음인지 생각한다. 내게도 내 샘이 얕다고 느낄 때 다른 사람에게 물 한 컵도 퍼주기 아깝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것이 닳는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샘은 경험으로 차오르는데, 내 것이 얕아 보여서 그 작은 지혜들도 다른 사람에게 말과 글로 전하는 일이 어려웠다.


지금도 내 안의 가치들은 나의 유일하고도 귀중한 자랑거리이지만 이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쉽게 한 컵씩 퍼준다. 아직 한참 더 차올라야 하지만, 이만한 정도도 나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지혜가 있다. 하지만 내 삶 하나로 충분한 삶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내 것처럼 퍼담을 때야만이 겨우 샘이 차고, 그런 사람만이 자신의 것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기쁘게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묻고 답해야한다.


그럼에도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무언가를 물어보기 전에 매번 답변할 사람과 나의 관계를 재어보고 그 사람이 나에게 충분히 답변해 줄 마음이 있을지 짐작해 보곤 한다. 하지만 답변하는 사람이 더 자주 되어 볼수록 그 일에는 그리 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음을,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의 태도와 진심이 더욱 중요함을 알아간다. 질문하고 답하는 일에는 특유의 정동이 일어나고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이 아닐 수도 없는 마음이 있다고 느낀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답변하는 사람은 어떤 이상하고도 애틋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반짝이고 예의 바른 질문자를 미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계보를 상상해 본다. 지금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지금 네가 아는 것을 답해주는 일. 그 오고 감이 쌓여 불필요한 것들이 가라앉고 오래 지속할 만한 것들이 건져 올려지는 거대한 인류의 역사가 보인다. 동시에 삶의 어떤 부분에서든 지혜를 가진 죽은 사람들의 현명이 만들어 낸 결과로써 현존재를 상상한다. 알고자 하는 마음과 가르쳐주고자 하는 마음이 귀하게 흐르고, 우리를 살리는 문장들이 우리 안에 남는 역사의 순환이 파도처럼 이어졌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질문하고 기쁘게 답변하게 되기를.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던, 죽어있고 살아있는 존재들의 지혜가 너와 나의 곁에 정령처럼 떠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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