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이럴 줄은 몰랐다. 이모들 마저...
앞선 이야기
시월드.
언젠가부터 이런 단어가 유행했다.
나와 내 동생은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어머니가 며느리를 어떻게 대할까? 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머니의 인생에 우리 형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그 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가족이 형성됨에 있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화를 잘 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예의 없게 구는 모습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일명 '싸가지 없게 구는 사람'에게는 주저 없이 화를 냈다. 결혼 전, 어머니와 가끔 미래의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버릇없고 예의 없는 여자는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하셨다. 뭐 어떤 시어머니가 버릇없고 예의 없는 며느리를 좋아하겠느냐만은 자라온 환경과 시대적인 사고방식의 생각차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보다 열 살 어린 며느리.
나와도 세대차가 있는데 어머니와는 어마어마한 세대차가 날 수 있는 나이 차이다. 어머니는 아내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꽤나 긴장 하셨다. 아내는 어머니를 처음 뵙는 날, 깔끔하고 예쁜 옷을 새로 샀고 예쁜 꽃 바구니와 선물까지 준비하였다. 분위기는 꽤 좋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걸 보니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드신 듯했다. 그날 저녁 전화를 드려보니 칭찬을 마르고 닳도록 하셨다. 동생도 전화가 와서는
엄마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칭찬하는건 처음보네
라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와 아내는 장녀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머니와 아내를 보며 태어난 순서, 즉 집안에서의 서열에 의한 역할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깨달을 정도로 아내와 어머니는 성격이 비슷하고 서로를 잘 이해했다. 장녀들은 조금 무심한듯하고 집에서 말이 없는 편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서로 공감했다. 또, 어머니와 아내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고등학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어떠냐며 공감대 형성을 하기도 했다.
아내는 항상 어머니를 잘 챙겼다.
결혼 준비 하면서 양가집에 마음 상할 일이 많다던데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양가집 서로 예물, 예단을 하지 말자고 했기에 섭섭할 것도 없었다. 아내는 항상 어머니를 공손하게 대했고 어머니와 전화번호도 주고받고 카톡을 하고 통화를 하기도 했다. 결혼 전,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갔는데 예비 시어머니와 연락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결혼 전인데 예비 시어머니랑 연락을 한다고??
굳이 결혼 전에 시어머니랑 연락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나도 장인어른과 연락을 하고 가끔 술도 마셨기에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갸우뚱 했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렇지 않다며
어머니가 엄청 잘해주시는데?
라며 친구들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모들도 나를 참 좋아하는데 우리 집안에 첫 조카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무던하고 느릿한 성격이지만 이모들은 꽤나 예리하고 눈치가 빠른 성격이라 내가 어릴 때 '나중에 네가 결혼할 사람 데리고 오면 너희 엄마보다 우리를 먼저 통과해야 될 거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이제 큰 조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예비 며느리를 만나고 온 어머니에게 어떠냐면서 전화해서 묻기도 했다. 어머니의 평은 워낙 좋았으나 이모들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어느 날 이모가 서울에서 외갓집으로 내려왔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 아내를 데리고 갔다.
예비 조카며느리가 온다는 소식에 외갓집도 긴장된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동생들에게 너희들도 마음에 들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지만 예리한 이모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와 아내가 외갓집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면서 이래저래 이야기를 해보더니 이모들도 너무 좋아했다.
서울 이모는 서울에도 올러 오라고 했고 우리는 서울로 가 이모집에서 며칠 간 자기도 했다.
이모는 노량진 시장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 와 예비 조카며느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 먹였다. 또 강남의 미용실에 가 머리도 새로 해주고 집에 갈 때 용돈도 두둑이 쥐어주었다.
그렇게 가족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고 결혼 후 그들의 관계는 더 좋아졌다.
이모는 서울에 있는 사촌동생들을 모조리 데리고 우리 집에 와 전복음식을 해주기도 했고 또 우리가 이모집에 놀러 가면 늘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내는 장인, 장모님께는 꽤나 무뚝뚝했는데 어머니와 이모와는 정말 사이가 좋았다.
장인, 장모님과의 전화는 궁금한 걸 여쭙거나 부탁드릴 때만 하는 편이었고 1분 이상 통화하는 법이 없었는데 어머니와는 한 시간도 넘게 통화를 했다. 수시로 카톡을 보내고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선물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어머니는 그저 며느리가 좋았고 외갓집에 가면 이모들의 조카며느리 칭찬으로 어깨가 하늘 끝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나는 이걸 '며느리 부심'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나와의 통화에 나의 안부는 안중에도 없다.
내가 전화를 걸면 이야기의 90%는 며느리 이야기고 10%가 손주 이야기다. 손주는 귀엽다, 요즘 잘 웃네 뭐 이 정도지만 며느리에 대해서는 마치 자기 자식인 양 챙긴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해라고 당부하셨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한이 있으리라. 내가 혹시나 아버지처럼 할까 봐 걱정이 많이 되는지 잔소리가 어마어마하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 성격이라 생각했고 또 아버지의 성격이 워낙 강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잘 못 내었기에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마음도 알게 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면 이건 내가 잘못했구나 아니면 이건 내가 잘 새겨 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아내는 우리 외갓집 며느리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이모들은 앞으로 들어올 며느리들이 큰 조카며느리와 비교되어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아내는 우리 외갓집에서 제일 어리다) 나 또한 이 정도로 그들이 잘 지낼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나의 친할머니와 잘 지내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내가 우리 가족과 잘 지내니 보기 좋고 감사하다.
그런데 정작 아내에게 물어보면 자신은 얼떨떨해한다.
다들 나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사실 아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예의 바르고 연락도 자주 드리고 또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면 잘 받아들이다 보니 어른들이 좋아하는 듯하다. 이런 걸 보면 아내와 우리 가족 간의 '기'가 잘 맞는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친구들끼리도 잘 맞는 친구가 있듯이 며느리와 시댁의 관계도 잘 맞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내를 처음 본 순간 '이 사람이다'라고 느낀 건 그 '기'를 직감적으로 안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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