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
앞선 이야기
이 글은 브런치 1위를 했던 브런치북 '10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의 여자 주인공 '그녀'의 입장과 생각을 쓴 내용입니다. '그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옮겨 썼습니다.
오궁은 항상 이야기했다.
아직 어리니까 커리어를 좀 더 쌓고 아이를 낳자
내가 아직 서른도 안된 나이인데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3개월 차였기에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의견을 적극 존중하여 커리어를 충분히 쌓은 뒤 아이를 낳자고 했다. 그런데 덜컥 임신이 되었다. 그것도 결혼식을 딱 한 달 앞두고.
출근길에 속이 너무 좋지 않아 지하철에서 뛰쳐나가 토를 했다.
처음엔 체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동안 이러는 걸 보니 오궁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주었고 나는 설마라고 생각하며 다음 날 아침 테스트를 해보았다.
두 줄이었다.
멘붕이 왔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줄 떴어
아....
그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뭐지? 왜 이런 반응이지? 나랑 결혼한다는 사람이 임신 소식이 기쁘지 않나??
지금까지 그렇게 나를 좋아해 주고 표현한 사람인데 임신했다고 하니 말이 없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내 몸 상태는 물론이고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그의 반응이 더 충격이라 엄청난 우울감이 찾아왔다. 배신감 마저 들었다.
그는 면접을 보러 서울에 간 상황이었고 당장 만날 수 없었기에 우울감은 더 깊어져 갔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지 않는 거야? 지울까?
그는 사색이 되어
무슨 소리야!!
그래도 이 우울감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날 그를 만났고 잠깐 집에 뭘 가지러 가야 된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가 집으로 들어갔고 잠깐 있다 올 줄 알고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를 불렀다.
잠깐 들어와 봐요!!
뭔가 도울 일이 있는 것 같아 가보니 그의 집이 온통 알록달록 풍선으로 꾸며져 있고 'Hello Baby'라고 적힌 풍선까지 붙어 있었다. 그는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의 아이를 임신한 걸 축하해요~
생각지도 못 한 이벤트였다.
그는 내가 임신한 것이 기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나에게 커리어를 쌓을 시간을 충분히 주겠노라 약속했고 그에 대해 양가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멘붕이 왔다고 했다. 사실 섭섭함은 있었지만 그가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꽃다발 외에 네모난 큰 상자도 준비했다.
이 상자에 우리 아기의 기록을 남기자!
사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날부터 좋은 일이 생겼다.
원래 그가 다니던 회사 근처에 어렵게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가진 집을 가계약했는데 갑자기 세입자로부터 나가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만약 그가 서울에 이직하게 되면 가계약금을 우리가 물어줘야 했는데 상대방이 먼저 계약해지 통보를 했고 되려 우리가 돈을 받게 되었다.
며칠 후 그가 본 면접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해외로 갈 필요 없이 한국에 남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결혼해서 바로 해외로 가야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오궁에게 1년 정도는 잘 사는 모습 보여주고 해외로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한국에(거리는 멀지만) 살게 되었다. 우리는 당장 서울로 날아가 살 집을 찾았고 작은 10평짜리 오피스텔 원룸을 구했다. 오피스텔이다 보니 우리가 구매할 건 침대 밖에 없었고 침대를 구입하러 여기저기 다녔다.
그의 아버지와의 문제도 해결 아닌 해결이 됐다.
아버님이 결혼식에 안 오시기로 한 것이다. 그는 항상 부모님이 자신의 결혼식장에 나란히 앉기를 원했지만 결국 아버님이 자신은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그 뒤로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우리는 그제야 청첩장을 제작하게 되었다. 결혼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에서야 겨우 청첩장을 돌릴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