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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Mar 24. 2023

나의 결혼식,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의 눈물

눈물 참느라 힘들었다.

앞선 이야기


이 글은 브런치 1위를 했던 브런치북 '10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의 여자 주인공 '그녀'의 입장과 생각을 쓴 내용입니다. '그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옮겨 썼습니다.


결혼식 당일, 나는 입덧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입덧은 친정 엄마를 닮는다던데 나 또한 엄마를 닮아 입덧이 심했고 호르몬 변화로 얼굴에 트러블도 생기고 몸이 축 처졌다. 그러나 얼마나 기대했던 결혼식인가, 이날만큼은 무사히 넘기고 싶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 산부인과에서 받은 입덧약을 먹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약도 효력이 발생하는 시간과 지속 시간이 있어 당장에 먹을 수 없었다. 최적을 시간에 맞춰 먹어야 했다. 우리의 결혼식은 11시였는데 새벽 5시부터 메이크업을 시작했고 나는 메이크업을 받기 직전 화장실에 가서 한번 쏟아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었다. 아기가 제발 결혼식 때는 버텨주길 바랐다.


드디어 메이크업이 시작되었다.

오궁은 혹시나 내가 몸이 불편할까 봐 이리저리 신경을 써주었다. 그의 메이크업도 시작되었고 머리에 손질도 하고 턱시도를 입은 오궁은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나도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갖춰 입었고 이제야 진짜 결혼식을 하게 되는구나 하며 실감하게 되었다. 조금 떨리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결혼식장으로 이동했다.

결혼 한 시간 전인 10시에 도착하니 결혼식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미리 신청해 둔 스냅사진을 찍으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나는 곧 신부대기실로 이동했고 이내 지인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에는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결혼이라 꽤 많은 지인들이 왔다. 신부대기실에서 함께 사진도 찍으며 축하를 받았다.


드디어 11시.

우리가 선택한 결혼식장은 버진로드가 하객의 시선보다 높은 데다 천고도 높아 무대 같은 느낌이었다. 양가 어머니들의 화촉점화를 시작으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이제 오궁이 입장할 차례다.

그가 버진로드에 올라서자 조명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사회를 맡은 그의 친구가 물었다.


신랑, 준비 됐습니까?!


됐습니다!!


그는 크게 외쳤다.


신랑, 입장!!


앗싸~!!!


그는 2002년 히딩크 감독이 했던 어퍼컷 세리머니와 함께 '앗싸'를 외치며 버진로드를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의 세리머니에 하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 버진로드에 섰다. 사실 나는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주인공인 이 상황에서,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예쁘게 걷고 싶었고 예쁘게 기록되고 싶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가 입장할 차례입니다.
신부 입장!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빠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나는 이를 보이며 활짝 웃으면서 복화술로 아빠에게


웃으세요~ 웃으세요~


라고 이야기 했다.

버진로드를 절반쯤 걸었을 때 그가 걸어왔고 아빠에게 90도로 인사 후 아빠와 포옹했다.

아빠는 그의 손을 잡고 내 손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묘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딸의 손을 다른 남자에게 건네주는 아빠... 수십 년을 애지중지 키운 내 딸을 잘 부탁한다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슴 찡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걸어갔다.

아빠는 아마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와 함께 단상에 서서 양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미리 준비한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주례가 없는 결혼이었기에 아빠가 주례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빠는 이 주례사를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작성했고 A4 용지 약 다섯 장 정도의 분량을 준비했다.


아빠가 주례사를 하러 단상에 올라왔다.

긴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빠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긴장이 많이 됩니다.


라는 말로 시작했다.

아빠의 목소리는 많이 떨렸다. 써온 글을 읽으면 되는 건데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아빠는 거기에 적힌 글을 읽는다기 보다 생각나는 대로 주례사를 한다는 것에 가까울 정도였다.


결혼식 전에 엄마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난 아마 결혼식장에서 펑펑 울 것 같아.
눈물이 화장 타고 내려와 검은 눈물을 흘릴 것 같아


그런 엄마의 말에 아빠는 항상 이야기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기쁜 일인데 울긴 왜 울어~


엄마는 결혼식에서 펑펑 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기쁜 일에 왜 울어야 하냐고 했다.


주례사 중 아빠가


내 딸 OO아...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숙였다. 아빠를 보면 눈물이 쏟아져 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아빠는 준비한 주례사를 다 읽지 못했다.

5장 중 세장 정도만 읽었다.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딸 OO아'에서 필름이 끊겨 버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귀 마저 닫아버린 것 같다. 주례사를 마친 아빠가 단상에서 내려갔고 우리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하객 쪽의 불은 대부분 꺼져있었고 단상에 불이 집중적으로 켜져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부모님 쪽은 잘 보였다. 부모님 쪽을 보는 순간 아빠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의 눈물이었다.


아빠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결혼식 날 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생각지 못 한 아빠의 눈물을 보니 내가 더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엄마는 항상 이야기했다.

아빠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너희들 참 많이 아껴


나도 알고 있었다.

아빠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행동으로는 항상 많은 사랑을 보여줬다. 아빠는 남편으로써도 아빠로서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란 나는 항상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엄마 또한 남자의 기준을 아빠에 맞추지 말라고 누누이 이야기했다. 나는 큰 딸이라 그런지 아빠를 많이 좋아하면서도 가끔 아빠한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세게 하고 짜증 낼 때도 있다. 돌아서면 후회하고 죄송스럽지만 아빠는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법도 한데 나는 그러질 못 했다. 아빠에게 표현 한번 제대로 못 한 딸임에도 아빠는 늘 한결같았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아빠의 눈물을 본 후 결혼식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끝나버렸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결혼하는 것이 맞는지,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많이 들었지만 이제 모든 이들 앞에서 그의 아내가 된 것을 선포했다. 이제 나는 그와 함께 '우리의 가정'을 함께 꾸려야 한다.


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그, 알고 보니 10살 많은 사람.

그런 그를 그렇게나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끈질긴 노력과 진심으로 함께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처럼 동갑을 만나 스물여섯 전 후로 내 직장을 가지고 돈을 모아 결혼하고 싶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10살 차이 나는 아저씨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내 인생에 나타나 정신없이 결혼하게 되었지만, 인생은 언제나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어쩌면 그와의 만남도, 이 모든 일들도 나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를 선택한 것이기에 그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잘 살아보려 한다.


10살 차이,

10년의 세월을 극복하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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