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아저씨

특별한 단체문자

by 세잎

2015년 12월 24일

눈 오던 크리스마스이브

그에게 처음 고백받던 날.

지난 2년 동안 나를 마음에 두었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아니 알아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그 2년의 시간.

그는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고백받기 1년 전.

2014년 12월

나는 대학교 중국학과 졸업을 앞두고 중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서관과 집만 오고 가며 사람들과의 약속도 모두 취소한 채 공부에만 몰두했었다. 내가 유일하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중 단 하루 일요일,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300여 명의 청년부가 있던 중대형 교회에서 그는 청년부 회장이었기에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 또한 나를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임에서 오고 가며 하루에 주고받는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 예의상 건네는 형식적인 인사가 전부였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그에게서 단체문자성 응원 문자가 왔고, 문자를 받을 때면 그저 교회 청년부 회장이 청년부 고시생들 모두에게 보내는 문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단체문자여도 매번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워 꼬박꼬박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고 그렇게 한마디 한 마디씩 연락을 이어갔다.


난 반백수 고시생이지만, 버젓한 직장이 있는 그는 어찌 그렇게 내 도서관 주변에 약속이 매번 있는지

"근처에 약속이 있는데......"

"지나가던 길인데......" 라며

초콜릿 하나, 커피 한잔씩을 꼭 그렇게 전해주고 갔다.


그렇게 매번 때마다 오는 단체문자가 나 한 사람에게만 왔던 특별한 단체문자였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지나가던 길에 생각났다며 초콜릿이며 커피며 박카스며 이것저것 주고 갈 때만 해도 진짜 그냥 주변에 일이 있는 줄만 알았다.




소설 <키다리아저씨> 속 주인공에게는 주인공을 남몰래 도와주고 응원하는 후원자, 일명 '키다리아저씨'가 있었다. 마치 그도 이 소설 속 키다리아저씨 마냥 내가 생각지 못하는 순간에 나를 계속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부담을 느끼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쓰고 또 고쳐 써서 보냈을 단 한 명만 받는 특별한 단체문자.

내가 도서관에서 나올 시간이 언제일 줄 알고 주변에서 계속 서성인 건지, 초콜릿을 건네받았을 때 스치던 꽁꽁 얼어있던 차디찬 손.

뒤에서 멀찌감치 나의 꿈을 응원하며 부담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그의 배려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쯤.


그는 그렇게 나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