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둘째의 유치원에서 가족운동회가 있었는데, 그 뒤부터 아이와 동네를 걷다 보면 모르는 엄마가 나에게 인사하는 경우가 생겼다.
나는 그분들을 모르지만 그분들은 나를 알아보며 인사를 해오니, 나도 어쨌든 가볍게 인사를 보낸다.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인 줄 착각하고 인사를 하나 싶었는데, 상황이 반복되니 아마도 지난 운동회 때문인가 싶어서 웃픈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도 이 유명세는 아들 덕분이 분명하다.
유치원 세계에서 어느 아이가 큰 공 굴리기며, 달려서 빼빼로 먹기며, 링 던지기나 깃발 꽂기를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서 유명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냥 잘하는가 보다.. 좋아하는가 보다..라고 엄마들이 생각하고 마니까. 그중에 유독 훤칠하고 환하고 운동까지 잘하는 아이가 있다 할지라도, 운동회에서 엄마들에게 중요한 인물은 둘도 셋도 없이 그저 자신의 아이뿐이라 아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아이를 알아보는 경우가 생긴 이유는 이 쪽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모두가 거침없이 큰 공을 굴리며 나아가는 가운데, 우리 집 둘째는 마지막 순서가 될 때까지 남아서 못하겠다고 울며 서있었기 때문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향해 응원을 외쳐주었지 뭔가.. 그날 운동회는 그렇게 화려하게 응원받으며 시작해서, 화려하게 응원받으며 끝났었다.
모두에게 응원을 받아서였겠지, 처음에는 무서웠더라도 몇 번 계속 시도하다 보니 용기가 나서였겠지, 주저하는 자신이라도 부모와 선생님이 괜찮다며 손잡아주고 함께 뛰어주어서겠지.. 아이는 마지막 행사였던 줄다리기에는 제법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선수단 퇴장' 순서에서는 자진해서 줄 맨 앞으로 나가 서더니 신나고 씩씩하게 퇴장했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어도 좋을 운동회인데,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사실 슬펐다. 왠지 몇 가지 순간이 아이 기억에 남아서 아이를 힘들게 하면 어쩌나 문득문득 걱정이 올라왔다. 분명히 그 뒤로 아이는 더 씩씩해지고 더 용감해졌기 때문에, 아이의 현실과 나의 감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긴 했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될지라도, 내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실, 모든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고 뛰어도 다니는데 자신의 아이만 여전히 기어 다닐 때, 달리기 경주에서 모두 신나게 출발선을 나섰지만 결국 자신의 아이만 뒤로 뒤로 뒤쳐져 버리기 일 수 일 때, 티키티카 신나게 말하며 무리 지어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는 말이 어눌해 무리의 대화에 끼지 못하곤 할 때.. '아이들은 원래 그러면서 크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지, 자라면서 잘하게 될 테지'라고 생각하며, 마냥 태연한 부모가 있을까?
못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라면 기껍게 응원해 줄 수 있어도,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일단 속상할 일이다. 자신의 아이가 '남들만큼은' 했으면 좋겠는 마음이 보통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한마디로 속상하지 속상해.
속상하지만, 울다가 용기 내다가 울다가 또 용기 내보는 아이를 보면 귀엽고. 대견하고. 짠하고. 뭉클하고. 고맙고. 이건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감정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말이 딱 이긴 하다. 원하는 대로 골라먹진 못하고, 무작위로 한 번에 느껴야 하는 그런, 좀, 과한 종합선물세트. 지나고 보면 남는 것도 많고, 좋긴 한데.. 누가 원할진 모르겠는.... 그런,...
* 오늘의 감정 [머쓱함]
무안을 당하거나 흥이 껵여 어색하고 겸연쩍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