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 >에 대하여
작년까지는 무방비 상태에서 쏟아지는 폭격을 고스란히 감당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개학 한주 전부터 두 아이가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학교 가기 싫어"를 듣고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지. 개학을 잊을 여행!
가자, 동해로!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집을 좋아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둘 다 내성적인 데다, 못하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불편하다. 첫째는 눈누난나 신나게 등교하다가도 눈에 학교가 보이면 자동으로 '바른 자세'가 되어 걸어간다.
둘째는 누나보다 좀 더 복잡하다. 누나는 유치원에 입학하고 교실 문간에서 '안 들어간다고' 엉엉 울기라도 했다. 그런데, 둘째는 '내가 우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지 말라'며, 굳이 혼자 눈물을 훔친다. 그때 달래주려고 내가 곁으로 가면, 자신이 우는 게 더 드러나니 저리 가란다. 집에서는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면서, 밖에서는 멋진 남자이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그저 웃프다. 꼬마에게도 지키고 싶은 체면이 있구나 싶고, 그냥 엉엉 울지 그러냐, 싶기도 하고.
어쨌든, 둘 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자유롭다. 그러니 기관이라는 그곳, 이 집 두 아이에게는 참 불편하다. 그러니 개학날이 두어 주쯤 앞으로 다가오면 아이들 입에서는 "학교 가기 싫어"라는 문장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서너 일이 남은 때부터는 분수처럼? 팝콘이 튀는 것처럼? 쏟아진다. 한마디로 불안하고 긴장되는 감정의 분출이랄까.
'학교 가기 싫어'를 여행과 바꿔야겠어
얼마 전에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둘째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 질문에 아이는 1초 고민도 없이 "대게 먹고 싶어"라고 답했다. 아마 최근에 TV에서 대게철에 대한 소식을 봤는가 보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는 대게를 먹으러 직접 울진에 가기로 마음을 냅다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개학 전 3박 4일 동안 아이들의 '싫어' 염불이 클라이맥스일 테니, 매번 반복되는 현실을 이번엔 여행과 바꿔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이 다소 즉흥적으로 보이나, 그렇지 않다. 지난 여름방학에 어느 알려진 교육 전문가가 아이들과 개학 직전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나도 그걸 사용해 보려고 겨울의 여행을 몇 번 참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학교가 불편해서 그렇지, 적당히 착실한 아이들이라, 시작만 되면 적응이랄 것도 없이 학교에 잘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그 직전이 마치 고문 같은 나날일 뿐이니, 그 고문을 제거시키는 전략도 괜찮아 보였다. 수-목-금-토 거기에 있다가, 일요일 하루 쉬고 우리는 학교로 골인! 내 전략은 단순했다. 바라는 것은 그저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이 여행에 취해서, 학교 생각을 좀 덜 하는 것' 하나였다.
아, 고백하건대, 예전부터 (나에게) 궁금한 장소가 거기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해양박물관! 이건 순전히 바다생물을 좋아하고, 박물관을 좋아하는 내 개인의 관심이었다. 결국 아이들의 관심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알찬 곳에서 절반만 구경하고 돌아 나왔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 관심사인 그곳을 꼭 들리겠다는 '꿈에 부푼' 목표도 집어넣었었다.
아이들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에서 몇 번이고 파도와 노는 게 좋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첫째는 이번 해변이 "생애 최고의 해변"이었단다. 집에 있는 대형 지도에서 같이 그 해변을 찾아봤지만, 죽변항과 울진항 사이에 있던 그 해변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그래도 모래가 그렇게 보드랍고 푹신했다니, 그럼 최고인 거다.
엄마, 나는 그 해변이 최고였어!
암요. 그럼요. 신나게 놀더군요.
그런데 엄마는 무척 추웠어.
그래도
바다를 그렇게 무서워하던 네가
파도와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우리는 남은 하루 동안 여행하듯 설렁하게 방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대로, 아이들은 긴장이 덜 들어간 상태에서 각자 자기 갈 곳으로 골인했다. 첫째는 개학한 날 집으로 돌아와서, 미지의 불안이 소거된 홀가분함을 펄쩍펄쩍 뛰는 몸짓으로 표현했다. 둘째는 입학한 날 유치원에서 나오면서, 계속 웃었다. 그 웃음에서도 역시 미지의 무서움이 해결된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이번과 비교해서, 과거에는 개학 직전에 내가 바짝 긴장해 있던 것 같다. 과거와 비교해서, 이번에는 내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두 아이를 ‘탁’ 믿어버리는 것, 그것 하나 정도 생각했을 뿐.. 개학이고 뭐고. 입학이고 뭐고. 그랬다. 그래서 인가?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편한 것에 그 영향도 있나? 싶다.
뭐가 어떻게 작용했든, 나는 아마 다음 방학의 끝에도 여행을 떠나지 싶다. 처음 먹어본 울진의 박달대게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내게 맛있었으니. ‘두려움‘을 맛있고 애틋한 추억과 바꾸는 결정은 우리에게 옳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