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가족의 눈물

막내의 뜨거운 안녕

by 재룬

2016년 9월 19일.


한 부자(父子)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다. 적막한 차 안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 경상도 사나이들답게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주변이 논과 산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에서 '군대'하면 빠질 수 없는 고유명사와도 같은 논산이었다. 그렇다, 이 집 막내아들인 내가 군대 가는 날이었다.


거의 10년 된 기억이라 흐릿하지만, 아직까지 현역인 내가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겠나. 꽤 많은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더 바래지기 전에 기록해두려고 한다.


더웠다. 누가 9월 군번이면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쾌적하게 훈련받을 수 있다고 했으나 이게 뭐람. 가뜩이나 기분도 묘한데 괜히 하늘을 향해 눈살을 찌푸려본다. 그날 논산의 날씨는 정-말 좋았든. 기분 나빴다.


육군훈련소 근처에 다다르니 뭔가 딱 봐도 군대 가는 아들, 딱 봐도 아들 군대 보내는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착잡했던 마음이 오히려 좀 편해졌달까,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


이제 이 사회와 잠시 이별할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을 때였다. 근처에서 머리도 깔끔하게 밀린 마당에 하, 뭐랄까.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순 없었다. 짧은 머리 덕일까, 실제로 시원했거든. 잘려나간 머리칼을 보니 마음은 또 섭섭하고. 말 그대로 시원섭섭했다.


그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딱 지금부터 할 일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동안 군대 언제 가야 하지, 휴학신청은 언제 하지, 다음 학기에 몇 학점을, 무슨 과목을 들어야 하지, 복수전공을 해, 말어 등 여러 가지 질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께서 이제 슬슬 연병장 쪽으로 이동하자고 하시며 집에 전화 한 번씩 하라고 하셨다. 엄마와 형은 출근해야 해서 오늘 못 오셨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 전화 한 통씩만 하고 통신사에 전화해서 휴대폰도 정지해 둬야지. 그렇게 나는 그 순간에도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생각다.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 같이 전화를 받으셨고, 평소와 같이 잘 출근했다고 한다. 잘 도착했니, 점심은 먹었니, 짜장면? 그걸로 되겠니.. 그놈의 밥, 밥, 밥. 엄마는 늘 그랬다. 정말 늘.. 그랬다.


나도 괜히 어색해서 지금 이 순간에 아무 영양가 없는 것들을 막 물어봤던 거 같다. 그런데 중간중간 엄마의 대답이 좀 늦더라.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데이터가 안 터지나? 여보세요, 엄마?


나는 그 짧은 순간 속으로 혹시나 했다. 어? 엄마 우는 것 같은데? 그래서 늘 장난기 있던 막내인 나는 설마 해서 웃으며 '엄마 우나 ㅋㅋ?' 하고 물어봤는데 엄마는 대답을 못하셨다. 한참 지나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 아니야..' 하고 겨우 답하셨다.


혹시가 확신이 되자 나도 목이 메었고, 쓰고 있던 모자를 쥐어뜯으며 실감했다. 엄마를 꽤 오래 못 보는구나. 그래, 이 날씨 좋은 초가을에 나는 헤어질 준비를 했어야 했구나.


근데 그러지 못했구나. 그래서 울고 계시는구나. 집에 좀 더 있었어야 했는데.. 회사 때문에 못 온 게 아니라, 차마 이걸 못 보겠어서 안 온 거구나..


그래도 둘 다 울면 이거 뭐 인사도 제대로 못하겠다 싶어 정말 어렵게 어렵게 참았다.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휴대폰 너머로 억지웃음을 짓고 있을 것 같은, 힘이 꽉 들어가 뻣뻣한 목소리로 '.. 잘 다녀와~' 그게 날 미치게 했다. 그거, 정말 힘들다.


'하.. 이거 사람이 할 짓이 못되네..' 경상도 사나이는 그제서야 왜들 그렇게 군대 간다고 울고 불고 하는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 어쨌든 다음. 형 차례다. 평소 형이랑은 유쾌한 대화를 많이 하기에 '그래, 드립이나 치면서 좀 웃다가 가자. 아휴..' 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자마자 알았다. 형도 울고 있네, 이거 미치겠다. 여러 번의 깊은 한숨으로 겨우 진정된 눈시울이 다시 견디기 어렵게 됐다.


이 사람들이 오늘 왜 이러나.. 대화 내용은 기억 안 나고 그냥 둘 다 거의 '누가 누가 눈물 잘 참나'만 하다 전화가 끝났다.


그렇게 휴대폰과도 안녕이다. 잠금장치도 모두 풀고 아버지께 드렸고, 슬슬 연병장 쪽으로 걸어내려 갔다. 경상도 부자답게 평소 아버지와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잘됐다. 방금 두 번의 전화로 눈이 벌겋게 된 것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병장에 다다르니 군악대의 힘찬 연주도 있었고,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현수막도 보이고.. 무엇보다 온 사방이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정신 나갈 것 같았다.


그 시장통 속, 5년 전 이곳에서 장남을 입대시켜 본 아버지는 능숙하게 앞장서 잠시 머무를 만한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


도저히 앉을 곳은 없었고, 시간도 다 됐고. '그냥 서있자.' 하고 아버지는 평소 밀리터리 덕후답게 '지금 나오는 군가가 뭐고, 곧 연대장이 저 쪽에서 나와 이렇-게 돌아서 단상까지 올 것이다, 저기 빨간 모자 쓴 애들이 너희들 조교다.' 등 설명을 하시는데 은근히 신나 보였다. 내 맘도 모르시는지.. 약간 얄미웠다.


오후 2시.


시간이 됐다. 입영 장정들은 연병장으로 내려와 달라는 방송이 울려퍼졌고, 시끄러웠던 관객석이 더 시끄러워졌다.


'예, 갑니다 이제.' 하며 마지막까지 내 눈시울을 숨기기 위해 시선을 깔고 아버지의 손을 콱 잡아 악수를 하는데, 새삼 아버지의 손이 참 크더라. 순간 어렸을 때처럼 의지하고 싶어졌다.


집안 사정 상 아버지를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면 뭐든 해주시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그럴까, 그 마지막 순간에 군대 가기 싫은 것도 해결해 주실 것 같은 철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런 건 이제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한테 좀 더 의지할걸. 학교 다녀오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었다고 자랑도 하고, 주말에 헤어질 때 '나 다음 주에 뭐 뭐 해요' 하고 공유도 좀 하고.


늘 '들어가~' 하고 자동차 창문을 올리며 멀어지는 아버지의 차를 보면서 손만 흔들던 어린 날의 나. 그땐 몰랐지, 돌아가는 차 안의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는 걸.


오늘은 평소보다 더 먼 길을, 더 오래 혼자 돌아가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미리 헤아릴 수 없었을까.


늘 그렇듯 혼자가 될 아버지를 등지고 연병장을 향할 때, 그 커다란 손이 남겨준 온기를 머금은 손으로 그제서야 맘껏 눈물을 훔치며 뜨거운 안녕을 했다.


안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가족들에게만큼은 안녕을 그렇게 하면 안 됐다. 21살의 경상도 아들은, 어지는 방법을 헤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뜨거운 안녕이 아닌, 충분한 안녕을 했다면 우리 경상도 가족은 덜 울 수 있었다. 덜 마음 아플 수 있었다. 난 그렇게 못했다. 쓰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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