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동행(同行)하다

같이 가려면 어떻게

by 재룬

훈련도 이제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남아있는 굵직한 훈련은 각개전투와 행군뿐이었지만, 체력적으로는 이 2가지가 가장 힘들기에 아직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다.


소문으로는 각개전투 중에 얼굴뼈가 깨진 사람이 있다는 둥, 숙영하다 뱀에 물려 응급실에 갔다는 둥..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많아 우리는 착잡해져가고 있었다.


어쨌든, 1박 2일 일정의 각개전투가 시작됐다.


출발하는 날이야 뭐 회복된 상태에서 가는 거라 괜찮았는데 훈련을 뛰고, 심지어 야외숙영 후에 녹초가 되어 이 길을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젠장, 거짓말하지 마.. 진짜로?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논길을 걷고 걸어 교장에 도착해 텐트 펴고, 지주핀 박고, 훈련도 하고. 또 저녁을 먹고 칠흑 속에서 야간훈련까지 마친 뒤, 도저히 여기서 잔다고 믿고 싶지 않은 비주얼의 3인용 텐트에 몸을 욱여넣었다. 심지어 밤이 되니 춥네.. 낮에 좀 꼼꼼하게 만들걸..


이튿날 해가 밝았다. 낮에 흘렸던 땀에 절은 채 흙먼지 가득한 텐트에서 벌벌 떨며 눈을 뜨니 이야, 기분 참 죽이더라.


'10분만 더..' 하며 밍기적 댄 놈은 한 명도 없었을걸? 다들 외마디 한숨과 함께 신속하게 텐트를 정리했다. 아니, 부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때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 지주핀이랑 텐트, 올 때 어떻게 갖고 왔더라? 아, 셋이 개수 잘 나누고 텐트는 한 명 몰아줬었지.


그 말인즉슨, 갈 때도 누군가는 본인의 군장에다 이 짐을 추가로 넣어야 한다는 건데, 우린 반쯤 박살이 났기에 여기 올 때랑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거 누가 들어야 되냐..


그때 텐트를 허문 자리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조원들이 보였다. 20살 동생들이었는데, 21살 형인 나는 몰아주기 가위바위보라도 하려고 동생들을 깨우려던 순간, 멈칫했다. 이게 맞나?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21살도 코흘리개나 다름없는데, 나름 형이랍시고 그 텐트와 지주핀을 전부 자기 군장에 구겨 넣고 있었으니. 심지어 애들 깰까봐 텐트도 접을 때 살살, 지주핀도 달그락거리지 않게 살살 집어넣었다.


어쨌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막사로 복귀할 시간이 되었다. 출발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서 대기하는데, 어깨가 벌써부터 뻐근한 게 느낌이 쎄하네 이거. 지금이라도 나눠 들자고 해야 하나? 올 때 거리를 봤기에 선뜻 짊어지고 출발하기가 두려웠다.


근데 이걸 어쩌나, 많은 훈련병들이 다닥다닥 서있어 이제 와서 군장을 풀고 뭐 다시 나누고 할 공간이 없었다. '하.. 그냥 가자..' 이미 얼굴이 똥빛인 동생들한테 형이 돼가지고 가오 상하게 쯧. 지금 돌아보면 참.. 경상도 사나이에게 가오란 뭘까?


어쨌든 걷기 시작했다. 계속 걸었다. 올 때 1시간 정도 걸렸던 거 같은데.. 눈앞이 캄캄했으나 앞사람 발을 차지 않도록 왼발, 오른발 잘 맞춰서 계속 걸었다. 올 때보다 확 늘어난 군장 무게가 당최 적응이 안 되더라.


그러다 문득 소리를 들어보니 사방에서 거친 숨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옆을 보니 다들 비슷하게 찡그린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중 대각선 방향에는 같은 텐트였던 동생이 보였는데, 약간씩 비틀거리는 것이 영 불안했다. 살짝 절뚝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저거 저래서 끝까지 갈 수 있겠나..

그때 텐트 짐을 내가 다 짊어지길 잘했다 싶더라. 저 친구가 혹시나 올 때처럼 짐을 나눠 들었거나, 몰아주기에 걸렸으면 지금 쟤 상태를 고려하면 분명 중간에 퍼졌을 것이.


우려와는 달리, 그 1시간 논길을 결국 우리는 같이 걸어냈다. 그래, 이 행군은 같이 걷는 것이었다.


만약 아까 졸고 있던 동생들을 깨워다가 서슬 퍼런 눈으로 몰아주기를 이기고, 동생은 결국 퍼져 어디 실려서 왔다면.. 이렇게 모두가 부둥켜안고 성취감에 젖을 수 있었을까.


노을빛으로 물든 막사에서 소년은 동행(同行)을 깨달았다. 같이 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아니, 이렇게 해야만 같이 갈 수 있는 거구나.


조금 여유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들고, 조금 남는 사람이 조금 더 나눠주고. 조금씩 밀어주고 당겨주며 앞으로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동행'이구나.

지난 한 달, 나는 여기서 동행하고 있었나.

낙오한 사람은 낙오할 수밖에 없었나.

내가 그거 잠시 들어줄 수 없었나.

물 한 모금 나눠줄 수 없었나.

한 번 더 알려줄 수 없었나.

진정 같이 가고 있었나.

.. 입가가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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