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엄지손가락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by 재룬

그렇게 뜨겁던 안녕이 차차 식어가던 오후, 후줄근한 사복차림에 반삭을 한 아들들은 이리저리 인솔을 받으며 입영절차를 밟고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타고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듯, 특유의 신속하면서도 어리버리한 발걸음으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수많은 이별들을 조명했던 태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등성이 너머로 자취를 감췄고, 논산에는 희미한 별빛과 우리만 남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처지로 한 생활관에 모였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다들 분명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걸? 논산의 첫날밤은 참으로 고요했다.


사흘간 입대를 위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또 거처를 옮겨야 했다. 입영심사대를 지나 '진짜' 훈련소로 넘어가는데, 그 길에 사연 많은 육교가 하나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젠 정말 돌아갈 수 없으니 사회와의 진정한 단절이었고, 누구는 그게 통곡의 다리라고 하던가. 이름 잘 짓네.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육교를 건널 때 기분이 참 묘하다. 왜냐하면 다리 아래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훤히 보이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차들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거든.


무엇보다 운전석의 모든 실루엣이 우리 아버지 같아 보여서 힘들었다. 논산 참 멀었는데, 잘 가셨으려나..


그렇게 육교를 건너며 저마다의 사연들을, 스쳐가는 얼굴들을 뒤로한 채 정식 훈련병이 된다.


근데 누가 그랬었는데. 조교들이 육교만 건너면 지금까지의 친절한 모습과 180도 달라져 무섭게 변한다고. 그래서인지 '진짜' 훈련소로 넘어와 우리 분대장을 처음 조우했을 때 좀 쫄았다.


다행히 호랑이로 변하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말투도 군인다웠을 뿐 험악하지 않았다. 군대 1일차의 나는 속으로 '군대 좋아졌다더니 진짜구나' 라며 군대 처음 와놓고는 아주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앞으로 5주.. 그렇게 한 달하고 조금 더 되는 시간을 훈련소에서 보내는데, 솔직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급박해도 뭘 하려면 기본 몇 십 명씩 우르르 움직이다 보니 참 깝깝하다.


근데 웃긴 게 1, 2주 지나면 그 혼란 속에서도 질서라는 게 생기고, '이걸 하라고? 이게 된다고?' 싶은 것도 내가 잘못한 거지, 사실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거기서 청춘은 자신감을 배운다.


그렇게 며칠 지나면 편지도 온다. 인터넷 편지를 받기 위해 나의 인적사항과 편지를 쓸 수 있는 링크를 내 페이스북에 올려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버지께 휴대폰을 드릴 때 잠금장치를 다 풀고 드렸던 이유인데, 과연 잘 올려주셨을까.


손편지도 받을 수 있다. 그때도 이미 인터넷으로 다 하던 시절이라 오겠나 싶었는데, 의외로 첫날부터 손편지가 왔다. 엄마였다.


생활관 내 자리로 가서 자세히 보는데 봉투에서부터 그리운 손글씨로 '30연대 ○대대 ○중대 ○소대 ○○○번 훈련병..' 막내아들 이름 앞에 이런 괴랄한 수식어가 붙다니, 분하고 눈도 침침했을 텐데 아주 정성스레 써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세련되다고 느낀 우리 엄마의 글씨체는 여전히 명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반갑게 읽어 내려가는데 그 끝자락에는


글씨가 삐뚤해서 읽기 힘들지?

미안해~ 차문에 엄지를 끼어서..


'글씨 잘 썼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일순간에 무너지는 내 표정을 편지지로 가렸다. 저마다 반가운 편지로 화기애애한 생활관에서 청승떨기 싫었기 때문이다. 쪽팔리기도 하고..


나는 작은 편지지 뒤로 천장을 보며 '왜 또 다치고 난리야 진짜.. 아프면 인터넷으로 하지..' 첫날 다 울은 줄 알았는데, 전혀요.


옆자리의 동기가 뭐라 뭐라 말을 걸어왔는데, 내 눈을 보고 눈치를 깠는지 말을 멈추고 내 어깨를 툭툭 쳐줬다. 그러자 멋쩍은 헛웃음으로 같이 웃었다. 나는 괜히 기지개를 켜며 '아유~ 짜증나~' 하고 눈물을 훔쳤다.


화장실 가서 세수라도 하고 싶은데, 어디 가려면 전우조라고 반드시 세 명이 움직여야 해서 그냥 옷소매로 닦아냈다. '됐다.. 그냥 자자..' 어차피 곧 소등시간이다.


엄마의 엄지손가락이 차문에 끼어 멍들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이걸 신경 안 쓰고 지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평소 엄마 어디 아픈데 없는지 묻기라도 했나, 안부전화를 자주 하길 했나. 왜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 효자인 척 오바인지.


멍든 손가락임에도 손편지를 택한 엄마의 마음을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훈련소의 중간 정도를 지나 틈틈이 웃을 수 있게 된 나는, 다시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해 가을, 경상도 아들은 한참을 더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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