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 고양이가 있어요. 그 고양이는 상자의 세계를 빠져나올 수 없어요. 갇혔어요. 상자속에는 유리병을 깰 수 있는 자동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병 안에는 고양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들어 있어요. 한 시간 후, 장치가 작동할 확률이 50%라면 그 시점에서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는 죽었을까요? 살았을까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군요."
"전자의 운동에 대한 예측은 확률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슈뢰딩거의 가설이죠. 미시의 세계가 그렇다면, 거시의 세계도 그럴까요? 이게 제가 드리는 질문이에요."
철호는 재미있다는 듯 손가락 끝으로 코를 문질렀다.
"그걸 제가 답을 드릴 수가 있을까요? 슈뢰딩거나, 아인슈타인이나, 보어나 20세기 벽두에 치열하게 싸운 걸, 제가 어떻게? 민지씨가 절 과대 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제 질문은 거시 세계, 즉 우리 현실에도 과연 그럴까라는 것이었어요."
"거시세계?"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에선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이런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죠. 살았거나 죽었거나, 둘중 하나의 선택이 우리 삶이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우리 현실에선 일어난다는 뜻이에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게 지극히 확률이 낮더라도 말이죠?"
"이제 제 질문에 진입하셨어요."
철호가 예상한 상상을 민지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상자, 방에 두마리의 고양이가 있었어요. 한마리는 피실험자이고 또 다른 한마리는 관찰자죠."
"관찰자!"
"그래요, 적당한 말을 떠올려봤지만, 그 정도의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요. 관찰자, 행위자와 관찰자는 서로의 존재를 몰라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행위자만 모른다고 해야겠죠. 관찰자에 의해 목격되었고 그건 관찰자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지금도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트라우마?"
민지가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밀한 분의 정사를 목격했어요. 그런데, 그게, 순전히 damnation 때문이었어요. 전 단순히 음악에 이끌려 따라갔을 뿐인데... 그렇게 들어간 방에서 한참 동안 opeth를 들었어요. 거터럴 보이스가 끝나고 소년같이 앳된 보이스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소리가 낮아지는 부분에서, 복도의 중간 방에서 소리가 새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민지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남녀의 정사를 목격했고,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거친 소리들과 문틈으로 엿본 어둠속의 형체들은 민지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철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그녀 뒷벽의 벽지가 만드는 연속무늬의 중심만을 응시했다. 잘못하다간 목구멍 속으로 한 덩어리 침이 꿀꺽 넘어갈 판이었다. 그래서 철호는 살짝 입을 벌린 채 목구멍과 비강 사이를 통하게 만들고 민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그 시점부터 제가 병이 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
철호는 짧게 탄식했다. 누군가에게는 쾌락의 절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질환이 된다는 것, 참으로 완벽한 기전이 지배하는 관계와 관계였다. 그 자신 역시, 정혜로부터 받은 충격을 잊지 못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아내라는 존재의 부정이 주는 충격은 그 후, 공황으로 왔고 심장질환으로 나타난 걸 생각하면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그 장면들, 그 소리들을 모두 잊고 싶어요. 그런데 한 번 들어온 기억들은 제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동감입니다."
"소설 속 작가님 이야기도 그러셨죠? 회복 할 수 없는 상처가 심장에 불도장으로 낙인된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 말이 저에게 깊이 와닿은 이유가 그런 데 있었어요."
철호는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상처는 아물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러지 않았다. 나쁜 기억은 더 나쁜 기억으로 덮일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는 더 좋은 일을 많이 경험하고 싶었고, 전보다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었다. 여자들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혜를 떠나보내고 연달아 혜연과 헤어진 후 철호의 삶에서 즐거움은 사라졌고, 여자들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상처가 되살아나는 상처와 고통을 글쓰기가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아픔을 억누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폭로였다. 말로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자고 한 일이었다. 일종의 치유를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적어도 철호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상한 건, 그 일 이후 자꾸 그 방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거였어요. 그 소리들을 다시 듣고 싶고, 그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거였어요. 어둠 속에서 벌이는 그들의 몸동작 하나 하나, 표정 하나 하나까지 느끼고 싶어졌단 말이에요."
"그건, 쾌락과 고통의 양면, 이 둘은 한 몸이에요. 바타이유가 한 말이에요.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쾌락은 일치한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일,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상태, 중독과도 같은 거예요. 끊어지지 않는 일, 그건 이미 인간의 본성의 영역에 들어와 있어요."
"예, 맞아요, 바로 그런 거였어요."
민지가 고개를 숙였고, 철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민지의 잔에 반쯤 차도록 술을 따르고 남은 술을 자신의 잔에 마저 부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어요. 저를 가르친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전화를 받는 사이 전 엄마의 토드백 속에 손을 넣었어요. 립그로스나 그런 걸 꺼내려고 했던 거 같아요. 척척하고 끈적한 것이 만져졌어요. 그 속에 구겨진 팬티가 있었던 거였어요. 엄마가 미치도록 싫어졌어요."
"아... 저런..."
산황이 선명한 그림처럼 떠오른 철호는 자신도 모르게 위로의 투식어들이 튀어 나왔다. 그건 서로가 같은 일을 겪은 데서 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나의 상처가 너의 상처와 같다는 공감대 형성과도 같은 친교적 언어였다.
"그래서 워홀을 간다고 미국을 갔었어요. 거기서 백인 아이를 만나서 친구가 된거죠. 세달 정도 즐겁게 잘 지냈어요. 아무 문제가 없었단 말이에요.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서부터였어요. 취업동아리에서 선배를 만났어요. 그의 목소리가 문제였어요. 속에서 목청을 긁으며 나오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에 전 절규했어요. 모든 게 멈췄어요. 몸이 굳어버리고 감각들이 사라졌어요. damnation이 떠올랐고, 그 방이 절 끔찍한 상태로 ㅁ나들었어요."
민지가 잔을 들고 고개를 꺾어 바닥을 비웠고, 철호가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유난히 새하얀 목에 굵고 파란 핏줄이 도드라졌다.
"현실 세계에선 두 개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아요. 있든지 없든지, 살았든지 죽었든지... 전 마치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런 상태는 있을 수 없다는데 말이죠."
"예를 들면, 이 방과 저 방 둘 중에 하나에만 민지씨가 있어야 하는데, 이방에도 저방에도 다 존재하는 것 같고,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걸친 것 같은 정신 상태인 것, 그런건가요? 제가 정확한가요?"
"정확해요, 전 이제 이방과 저방에 동시에 존재해요. 그래서 선배도 만날 수가 없게 됐어요. 만나면 자꾸 싸우게 된단 말이에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있을 수있는 일인가요?"
질문은 다시 두마리의 고양이로 돌아왔다. 하나의 공간에 존재하는 두 마리의 고양이,그들이 수행한 역할은 정 반대의 것이었다. 하나는 쾌락이었고, 하나는 고통에 가깝다. 이제 그 관찰고양이가 쾌락쪽으로 넘어가고싶지만 그게 안 된다. 그 어떤 무엇이, 여자를 이 쪽과 저 쪽의 경계에 멈추어 서게 한 것이다.
철호가 보기에, 민지는 우울의 시작 단계로 보였다. 의도치않게 봐서는 안되는 공간을 열었고, 그 공간은 자신의 공간과 그 너머의 공간 중간에 있었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에고의 독존성이 허물어지고 있는 단계라고 판단되었다. 이걸 극복 하기 위해선 허물어진 경계를 회복하든지, 완전히 저쪽 경계로 넘어가 버리는 방법이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어떤 쪽으로도 결정 내리지 못하는 결정 장애의 혼란 상태가 그녀에게 온 거라고 철호는 단정했다.
"참 조심스런 이야기네요. 민지씨 만큼은 직접적인 충격은 아니지만, 저도 그 충격을 기억합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충동이 일었으니까요. 내 것을 빼앗긴 사람이 할 수있는 가장 큰 공격이었을거예요. 하지만 민지씨는 여성으로써 여성을 본 것이고, 상대 남성 또한 민지씨와 크게 관련이 없는 분인게 맞죠?"
"맞아요."
"그렇다면, 모친에 대한 부분에 대한 상담이 있어야겠군요."
"엄마는 그렇다 치고 아빠 얼굴을 더 볼 수가 없어요. 무슨 말씀인지 감이 오시죠? 제가 꼭 큰 죄를 지은 기분을 둘 사이에서 감당하고 있어요."
"그런데 말씀이죠..."
철호는 민지의 말을 끊었다. 민지가 이런 사적인 문제를 자신에게 고백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할 이유도 철호에게는 없었다.
"굳이 제가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보이는군요. 상처와 회복에 관한 부분이라면 클리닉을 다니셔야 할 듯합니다."
"작가님의 연재를 읽으면서 그럴 생각이 없어졌어요. H가 우울증에서 치료되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사실이 그랬다. 혜연의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치유되었다. 혜연이 나를 만나고부터 느슨했던 감정상태에 텐션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실감각을 되찾았던 것,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민지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신 영역은 워낙 케바케가 많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죠."
"작가님에게, 절 걸겠어요."
지민이 일어나 상의를 벗어 옆에 놓은 의자의 등받이에 걸쳤다. 그리고 브라우스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끌렀다.
"어서 절, 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