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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들

by 별사탕

그 사내가 틀림 없었다. 세미나장에서 마지막 질문을 했던 남자. 사생활 침해, 사회 상규와 도덕률을 어긴 소설이 예술로써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직설적인 비난을 했던 사람이었다. 몸집보다 느슨하게 헐렁한 마이 속에 받쳐입은 까만색 슬림핏 셔츠의 남자, 마치 마네킹에 옷을 걸쳐 놓은 것처럼 몸과 옷이 따로 놀았던 남자였다. 하지만 속에 입은 셔츠는 그의 단단한 몸을 말해 주었다. 그건 머슬 운동으로 키운 근육덩어리와는 다른 생활근들이 모인 다부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철호와 민지를 줌심에 두고 천천히 돌아서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산 속의 밤공기가 쾌적했다. 산 위에서 불려 내려온 바람이 옷깃에 스미며 선득한 차가움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온화하고 평온한 그런 밤이었다.

철호의 한쪽 팔이 떨려왔다. 민지가 철호의 팔 안쪽으로 자신의 팔을 넣고 힘을 다해 그에게 바짝 몸을 붙였다.


“무서워요. 신고해요.”


철호는 이것은 분명한 경고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민지와의 관계에 대해 경고했고, 그 경고의 선을 넘었을 경우 자신이 직접 나타나겠다는 말, 그런 다음은? 갑자기 몸 안 쪽에서 서늘하고 차가운 것이 밀려 올라왔다.


“지금 집에 갈 수 있겠어?”

”선생님을 이런 데 두고 제가 갈 수 있겠어요?“


민지가 철호의 팔을 끌어당겼다.


“호텔에서 자고 올 걸 그랬어요.“

“거기도 머물지 말라는 경고였어.“

“결국 여기까지 왔죠.”


그랬다. 상대는 철호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고 민지와의 관계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방금 저 협박범은, 그 사람의 심부름꾼일 것이다. 하수인. 이 사람 뒤에 무거운 그림자같은 공포가 서렸다. 다시 어깨를 타고 팔에 난 털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야구 배트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하얀 스테인레스캡슐을 꺼냈다.


”이게 뭐죠?“


철호는 민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민지를 식탁의자에 앉혀 놓고 깨진 창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창이 박살났고 그 파편이 방안쪽으로 떨어져 바닥이 엉망이었다. 손으로 걷어낼건 걷어 낸 후 빗자루로 쓸어 쓰레받이에 담았다. 민지가 들어와 창틀에 박혀있는 깨진 유리 조각을 빼내려 했다. 어차피 유리를 갈게되면 유리집에서 정리해 줄테니 만지지 말라며 철호는 민지를 막았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내가 연락할게.”


철호는 민지가 옷을 입는 사이 바깥을 살폈다. 어둠에 잠긴 숲에 희미한 등이 하나 지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같이 가요.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 혼자 내버려 둘 순 없어요. ”


민지는 단호했다. 벗어둔 옷을 차려입은 민지가 다시 식탁에 앉아 캡슐을 만지작거렸다. 이리저라 만지고 돌라는가 싶더니 이내 캡슐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 보세요. 여기 유에스비가…”


철호는 반으로 나누어진 캡슐 속에 툭 튀어나온 막대모양의 유에스비 형태의 접속구를 보았다. 건네 받은 캡술의 하나는 뚜껑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본체의 기능을 하는 듯 했다. 뚜껑과 본체는 무게 자체가 달랐다. 이걸 던진다면 다양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뾰족한 부분이 목적물을 향해 날아가는 물리적 구조였다. 속에 든 전달 물질에 대한 보호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물에 날아가 파괴한 후 온전히 전달 내용물을 보호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완벽한 구조를 가진 물건이었다.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냐. 민지와 관련된 사건이야.“

“저 때문에요?”

“잘 생각해봐, 자기와 내가 같이 있으면 안돤다고 샹각핯 하람, 그게 누구야?”


민지는 남자친구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해 까맣기 모를 것이고, 이 실험이 끝나면 자신은 즉시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내색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 없는 그였다.

그리고 또? 알면 안되는 서람이란, 사실 전부에 해당하지 않을까? 특정하기 쉽지 않은 추론이었다. 도덕적인 기준과 이해 타산의 기준 둘중에 이해타산의 기준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럼, 도덕적 기준? 부모가 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써가면서 까지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려할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가 어떤 경고를? 나이 많은 남자와의 관계? 하지만 그건 아빠와 아무런 인과가 없었다. 그냥 나를 불러 이야기하면 그만이었다. 듣든 안 듣든 그건 내 마음이니까, 철호와 자기 사이에 이런 식으로 끼어들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민지는 자신이 모르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 문제는 김철호의 문제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미쳤다.


”아빠예요!“

“응?”


철호는 놀란 목소리로 민지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해요, 이런 방식. 아빠의 방식이에요.”


철호는 순간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고 염치없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했다. 애초부터 민지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 일로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받고 스토킹에 이 밤중에 해꼬지 당할 우려까지 생겼다 생각하니 앞으로의 일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부담감이 깊어졌다. 민지에 대한 마음까지 어둡고 무거워지고 말았다.


”이걸 컴퓨터에 꽂아봐요.“


민지가 캡슐의 반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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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