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는 바닥과의 충격한 두개골이 우상측이 완전히 함몰되어 뇌수가 터진 상태로 화단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타살 정황은 없어요. 유서도 발견됐고, 유족을 수소문 해봤는데, 서류상 독거잡니다."
아파트 진입도로가 막힐 정도로 주민들이 고개를 빼들고 폴리스라인 안쪽을 쳐다보았다.
"김형사야, 저기 경광등 끄고, 119 진입로 확보하라고 해. 사체 보관실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고, 별 거 없으면 무연고로 가자."
자다말고 새벽에 출동한 수사과장 김형철은, 최초신고자가 왜 경찰에 먼저 신고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살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119 신고가 먼저였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타살정황이나 흔적을 찾느라 찌푸린 미간 한쪽으로 눈썹을 치켜 세운 채 신경이 날카로웠다. 감식반의 카메라 셔터가 번쩍거리는 사이로 김형철도 핸드폰을 꺼내 여기 저기 필요한 사진을 몇장 찍었다. 현장은 늘 혹시 모를 변수가 있을 수 있었다.
"핸드폰 암호도 풀어놓고, 유서에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놨어요. 철저히 준비된 자살로 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근 통화내역 조회해보고, 필요하면 녹음 파일도 뽑아달라고 하고, 나중에 목격자 나타나면 좆된다. 사돈의 팔촌 친척관계 알아내서 촌수 젤 가까운 어른 한테 연락해봐."
"성명 이상기, 대기업 출신 아이티 업체 연구 팀장, 직계가족 전무, 휴대폰 저장 주소록에 달랑 하나 있어요. 떨어지기 전에 다 정리한 것 같은데, 포렌식할 만한 이유도 없는 것 같아요."
김형사는 순경들이 바리케이트치고 있는 너머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905호? 소문없이 조용하게 살던 사람 아녀? 왜 죽었댜?"
"누가 알유? 그럴만 했응께, 저렇게 되아 부럿제."
"사람 일은 그래서 모르는 거여."
김형철은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 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형사를 불렀다.
"야, 소장한테 여기 관리소 직원들 다 불러 모아서 특이사항 물어보고, 지금 시간 좀 아니긴 하지만, 앞집 탐문도 좀 해봐. 빨리 마무리하자. 날밝기 전에, 언능 뛰어!"
쪼그리고 앉아 있던 흰색 가운을 입은 반백의 사나이가 일어나며 시약 가방을 챙겼다.
"타살 흔적은 없어. 혹시 일생기면 연락하시고, 부검하는 일 없도록... 소견서는 출근해서 오전에 이메일로..."
검시관은 늘 그렇다는 듯이 형식적인 말투를 남기고 가방을 들고 타고 온 차를 타고 사라졌다. 검시관의 차가 나간 통로를 되짚어 사람들을 뚫고 앰뷸런스가 들어왔다. 시신확인을 한 대원이 인도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했고 김형철은 받아쥔 펜으로 최초발견자 아래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넣었다.
"지구대, 어이 지구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순경들 중 아무나 오라고 불렀다. 출동 나온 세 명의 순경이 한꺼번에 뒤돌아 본 것을 김형철은 아무나 한명 오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나잇살 먹은 경장이 옆에 선 순경을 툭 쳤다. 옆구리를 찔린 순경이 김형철 쪽으로 뛰어왔다.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옮기며 끊어놓은 폴리스라인도 다시 치게 했다.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 올 수있으니 벽까지 이어지도록 포인트 전체를 커버하도록 단도리를 시켰다. 이쪽과 저쪽이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한 김형철은 다시 핸드폰을 높이 들고 정면과 오른쪽 왼쪽의 사진을 한장씩 더 찍었다.
김형철은 이제 자신이 할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에 들어가서 김형사의 보고를 받고, 종료처리전에 한번 더 연고자 탐색을 해야 할 것이고, 검시관 소견서도 확인하는 절차가 몇 개 남아 있었다. 종결처리에 확실한 건 사건 처리 책임자를 찾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연고 처리로 시구에 돌려야했다. 그런 것보다야, 연고자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이 고인을 위하는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양복을 입은 사내가 뛰어왔다. 김형철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급히 말을 이었다.
"소장입니다. 저희 관할에서 처리하면 되는데 이렇게 직접 오셔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이 지긋해 뵈는 파출 소장이 이 새벽에 부랴부랴 전화를 받고 나온 것 같았다. 김형철은 자신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지만, 잠이 깬 김에 발걸음을 한 셈이었다.
"어차피 우리도 나와야 하니까..."
"무연고 처리로 방향이 잡힌다죠?"
"여보쇼, 당신이 저렇게 됐는데 무연고로 넘기면 좋겠소?"
"관내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하여튼 절차대로 빈틈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사실 이 지역은 주로 노인들이 사는 30년 이상된 아파트들로 단지를 이룬 마을이었다. 고층아파트도 별로 없이 단층으로만 구성된 스카이라인이 편안한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노인친화적 슬로우 도시에 들었다. 그렇다고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거나 도시간 상호 이해관계의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동네가 절대 아니었다. 정부청사가 오래전부터 들어서있었고, 면적당 숲 조성비율이나 일인당 학급 수 등에서 전국최고의 생활여건을 가지고 있었고 공시지가 또한 전국최고였다. 더구나 지자체 예산 비율 또한 매년 상위권을 유지하는 명실상부한 자치도시였다. 그런 동네에 젊다면 젊은 사람이 고층에서 뛰어내릴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도시의 퇴행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 줄도 몰랐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병리 병폐가 한 건 두 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형철은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이 마을에 현장감식이라는 차원에서 나와 본 것이었다. 사회병리학은 항상 불안을 내포한 어두운 징조를 전조현상으로 가지고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런 측면에서 세상 어떤 일도 그저 일어나는 법은 없었다.
"김형사야, 최초신고자 신병 확보하고 왜 경찰에 먼저 했는지 물어봐, 질문 놓치지 마라."
오후 두시가 되면서 점심을 먹고 들어온 직원들이 늘어지고 여기 저기 산만한 사무실 분위기였다.
"김동민 형사님, 전화받고 왔어요."
흰색 나이키 모자를 쓴 여자가 지구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사과장 맞은 편에 앉아 코인 정보를 보고 있던 김동민은 부스스 일어나 그녀를 돌아보았다.
"누구?"
"안정안이라고... 그 이상기씨 일로..."
핸드폰에 남아있던 유일한 연락처의 주인공이었다.